지금은 고독해야 할 때
지금은 고독해야 할 때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7.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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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성실한 사람이 사형을 당했다. 그는 단지 생각 없이 맡은바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도 죄가 되는 것일까.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아주 성실하고 근면하며 자신의 일을 철저하게 수행한 사람이었다. 법정에서 그는 자신은 직분에 충실했을 뿐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악명 높은 유대인 학살의 최고 책임자로서 600만 명을 아주 효율적으로 죽인 인물이다. 결국,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성실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고 만다.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이 유죄인 이유를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요즘, 국민들 사이에서 일본 제품 불매하기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부품의 수출 규제 조치로 촉발된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그동안 많은 역사 왜곡을 해 왔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역사 왜곡을 하고 있고, 아마도 미래에도 반성은 하지 않을 듯이 보인다. 일본을 두고 우리는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직도 일본과 해결하지 못한 역사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있다. 아렌트는 노동자를 두 부류로 나누었다. `아니말 라보란스'와 `호모 파베르'. `아니말 라보란스'는 세상과 차단된 채 그저 자기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 다시 말해 일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호모 파베르'는 윤리와 도덕을 돌아보며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아니말 라보란스가 `어떻게'만을 생각한다면 호모 파베르는 `왜'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작금의 사태를 보며 일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얼마 전 일본은 참의원 선거를 치렀다. 그런데 아베신조가 이끄는 당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일본 국민성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본은 왜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하지 않을까. 자신들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다시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를 만들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일본 국민은 성실만 한 것일까. 아베 신조의 정책에 대한 의심도 없는 것일까. 사고하지 않는 국민은 이미 죽은 국민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말 라보란스',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아주 성실한 사람. 모든 일본인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사악한 동기에서 행동하지 않았고 그 누구를 죽일 어떤 의도도 없었으며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지만 결국은 그가 한 성실한 행동은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에 넣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윤리와 도덕을 돌아볼 줄 아는 `호모 파베르'가 많을수록 그 사회는 활력 있고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그것은 곧 일본국민과 우리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사유가 모든 활동을 능가한다는 아렌트의 결론을 믿으며 그녀가 저서 말미에 인용한 카토의 말을 떠올려본다. 무엇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고독이므로….

“사람은 그가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때보다 더 활동적인 적이 없으며, 그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롭지 않은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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