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그릿(GRIT)
마지막 그릿(GRIT)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7.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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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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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곳에 발을 디뎠다.'는 말로 시작하는 그림책이 있다. 열 살 동화 작가 전이수의 『걸어가는 늑대들』 작품이다. 기계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사람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엄마와 함께 큰 카페에 음료를 주문하러 갔는 데 거기 있는 많은 삼촌과 누나들이 휴대폰만 하고 있더란다. 서로 마주 앉아 게임을 하거나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작품이라고 한다.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의 모습은 어떨까?

여행하며 다니는 한 무리의 늑대들이 도착한 도시는 매우 깨끗하고 조용했다. 갑자기 쫓아오는 로봇을 피해 오름(`산봉우리'의 제주 방언)으로 올라가니 좀 이상했다. 오름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늑대가 오름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람이 살이 찌고 비대해진 나머지 오름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오름처럼 거대해진 사람은 늑대들에게 처음엔 자기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어느 날, 로봇들이 찾아와 모든 일을 대신해 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편하고 좋았어, 리모컨만 누르면 로봇들이 필요한 것은 다 해결해 줬거든.” “일은 하지 않고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더니 힘이 없고 살만 계속 쪘어, 이제는 움직이거나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우리는 너무 게을러,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돼 …” 그리고 밤이 되면 오름은 하나씩 없어지곤 한다. 죽고 마는 것이다.

기계가 발명되고 생활이 편리해 지면서 점점 무디어 가는 사람의 존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포자기한 사람의 모습은 한없이 가여웠고, 달빛에 비치는 도시는 밤하늘에 부유하는 쓰레기 덩어리 같다. 오름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 나선 늑대들은 마을의 끄트머리를 지나다가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흙냄새를 맡게 된다. 늑대는 화분에 흙을 담아 작은 꽃을 심어 오름들에게 가져다준다. 오름들은 아침저녁으로 꽃에 물을 주고 햇볕을 쐬어 주고 늘 관심을 가졌다. 꽃이 시들면 열심히 지켜주었고, 꽃이 웃으면 오름들도 같이 웃었다. 그렇게 오름들은 조금씩 꽃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늑대는 오름들을 아예 흙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없어진 줄 알았던 흙을 본 오름들은 무척 기뻤다. 흙을 만난 오름들은 마음속에 희망이 올라왔고 그동안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버린다. 결국, 오름들은 몸을 일으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린다. 새싹이 나온 날은 오름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느끼는 보람이 이렇게 눈물 나는 건지 새삼 깨닫는다.

당신은 작품 속의 늑대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는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그릿(GRIT-회복 탄력성, 투지)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하찮게 사그러들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늑대의 모습으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사람은 타인을 향한 긍휼한 마음이 생길 때 비로소 사람다움이 깨어난다. 어떨 때는 타인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몸이 비대해지고 물리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정신과 마음도 함께 절망했던 사람은 작은 흙냄새와 꽃 한 송이로 다시 의미로워지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잠시 길을 잃었거나 마음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이에게 응원을 보낸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당신은 오늘도 새로운 곳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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