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그릇
유리그릇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9.07.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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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여름이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차가운 커피는 시각을 넘어 온몸의 감각을 일깨운다. 거기에다가 얼음조각의 부딪는 소리까지 맛스럽다. 갑자기 유리그릇의 용도가 떠올랐다. 냉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보고 듣고, 입으로 전해오기까지 적절한 맛을 더해주는 역할의 요긴함에 대해서다.

보인다는 것에 마음이 꽂혔다. 그릇에 담긴 내용물이 어떤 것인지 어떤 빛깔인지 가늠할 수 있는 유리그릇의 정체가 신비했다. 만일 그렇지 않은 그릇에 차가운 커피를 넣어 마신다면 그 맛이 어떨까 싶다. 맛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각을 넘고 촉각을 지나서 미각에 이르게 되는 그 짜릿함은 무엇보다 특별한 느낌이다.

한 가지 염려는 따른다. 깨지기 쉬운 탓에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다른 그릇과 차별을 두는 유리그릇은 사람의 속성과 유사하다. 겉과 속을 거침없이 드러내다 보면 때로는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하며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무엇이 담겼는지 훤히 볼 수 있는 유리그릇, 차갑거나 뜨겁거나, 사람의 표정을 읽는 것만 같아서 직관을 떠나 유용함만 생각하고 싶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가까이 알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리그릇의 표면을 지닌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관계가 이어져 간다. 그것이 살아가는 실상의 한 부분이다. 오히려 그럴 때는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레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며 사는 것이 편한 방법은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그 친구와는 오랫동안 유리그릇과 같은 사이였다. 그만큼 가깝고 투명하다 여겼다. 어느 순간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였는지 몰라도 미세하게 균열이 생기더니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그릇처럼 한쪽으로 몰아놓은 상태이다. 안부를 버리고들 살아간다. 나는 그래도 쉽게 내려놓지 못한 채 가슴에서 파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씁쓸하다. 나이가 더해지면서 그 결과가 너그럽지 못했던 나만의 소양임을 알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어버린 시간이다. 아집이라 해도 아직은 용기를 내지 못한다. 꿈속에서나마 가끔 만날 때 기억 저편으로 돌아가서 반가울 뿐이다.

유리그릇에 무엇이 담기는가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 나는 그것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려 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지나친 요구였으며 표현이었다. 내 마음이 이러하니 상대방도 그러하길 바랐던 짧은 견해가 단절을 불러왔다고 짐작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그 친구를 떠올린다. 어김없이 아프고 그립다. 부서져 내리지 않고 형태만 남은 유리그릇 안에서 얼기설기 남아있는 이야기들이 밖을 향하여 튀어 올라 시야를 막아선다. 버리지 못하는 애증이 가슴속에 있나 보다.

깨달았다. 바로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그랬다. 유리그릇과도 같은 형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깝든 멀든 언제나 주의가 뒤따라야 하는 처지였다. 예민하다면 얼굴의 표정과 목소리에 어떤 생각이 담기는지 느끼기조차 한다. 유리그릇의 정체가 심오하게 다가온 오늘이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용도에 쓰임 받는 것처럼 앞으로 내 삶의 모습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선 마음부터 맑고 견고하도록 다스려야 할 터이다. 금가고 깨지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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