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풍경
다른 풍경
  • 최승옥 수필가
  • 승인 2019.07.16 2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최승옥 수필가
최승옥 수필가

 

며칠째 복숭아 봉지 씌우는 일을 하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250여주가 되는 복숭아나무를, 언제 다 끝내나 싶던 일이 어느새 절반을 넘게 씌웠다. 이랑에서 보면 나무마다 주렁주렁 노란 옷을 입은 모습이 마치 복숭아가 노랗게 익은 듯하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꾼을 더 불렀다. 다행히 우리 복숭아밭에서는 아직은 한국 사람이지만 옆 농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팀을 이뤄 일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이 있어 농사를 지을 수가 있다. 날씨는 더워지고 곧 장마까지 들이치면 복숭아가 실하게 여물지 못하니 서둘러야 한다.

재작년 일이 떠오른다. 그때도 봉지를 씌우던 이맘때쯤이다. 아주머니 몇 분이 봉지를 씌우고 있었는데 일을 마칠 무렵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고함을 쳤다. “난 도저히 마음이 맞지 않아 일을 더 못하겠어, 한 사람을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우리 일곱 명은 내일부터 안 올 거여”한다. 도대체 누구를 못 오게 하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소리를 지르는 이유조차 간파할 수가 없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튿날 소리를 지른 아주머니 일행은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 부부는 어둑새벽부터 어둑어둑해질 무렵까지 봉지를 씌웠다. 목이 꺾어질 것 같았지만 시기를 놓치면 농사는 망치게 돼 있어 죽을 둥 살 둥 밭에서 살아야만 했다. 나중에 그 아주머니의 일행에 관해 들리는 이야기론 식당 밥을 시켜준 것도 불만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유증이 깊어 설까. 올해도 열매솎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밥걱정이 앞섰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몸도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는 상황에서 먹거리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더군다나 인건비도 오른 데다 내가 집에서 밥을 해서 나르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외려 내가 일을 하면 일도 훨씬 줄어들고 식당 밥을 시켜 먹는 것이 더 절약된다. 하지만, 일꾼들은 점점 갈수록 일보다는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요즘 많은 농장에서는 참이나, 점심도 각자 해결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비용 면에서 올해부터는 아예 외국인 인력만 쓰기로 한 농가가 점점 늘고 있다.

작년에 이웃의 과수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복숭아 일을 잠깐 했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몸놀림으로 다 알아차렸다. 한 가지 일을 하면 다음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약 외국에 나가서 그와 똑같이 같은 일을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나는 바로 포기를 하고 돌아왔을 것 같다.

요즘 농촌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눈에 띈다. 대농을 하는 농업인은 아예 의식주를 마련해주고 한집에서 살고 있다. 주로 아시아인으로 중국, 베트남, 태국 그리고 더 멀리 유럽인 러시아인들도 있다. 이제는 이들이 없다면 농사일도 못 하지 싶다. 어디 농사뿐일까. 공장에서도 이미 힘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 차지하는 것이 요즘 우리나라 현실이다. 힘든 일은 하기 싫고 편하고 깨끗한 일만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와 고마움을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