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발전’, 그리고 인간의 권리
‘성장’과 ‘발전’, 그리고 인간의 권리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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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나도 한때는 그랬다.

`물 먹었다(기자들의 세상에서는 `낙종'을 그렇게 불렀다)'는 단순한 이유로 끔찍한 막말을 퍼부으며 비상식적인 인간으로 몰아갔으며,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으니 하루라도 빨리 다른 직장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는 저주도 서슴지 않았으며, 능력과 처세에 따라 차별적으로 후배와 아랫사람들의 편을 가르는 일에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그저 당장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얼마나 긴장하고 공포에 떨고 있을까라는 생각은 조금의 틈도 차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당연한 일로 여기며 성장과 전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항상 남들보다 앞서가려는 속도의 욕망과, 남들보다 현명하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잘난 척이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당시 나는 직장은 즐거운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데 이골이 나 있었다. 그 때의 어설픈 논리는 이랬다. `사람은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장 많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관계를 만드는 직장 내 낮 시간의 노동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논리로 내 강요와 위협, 또 학대와 차별과 비인간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삼아왔다.

그 때는 누구나 그랬다는 말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한참의 세월이 지난 지금이라도 제대로 깨닫고 있는 것인가. 오직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코노믹애니멀적 관성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문득 이르요론트 부족의 비극이 떠오른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이르요론트 부족은 20세기에 진입한 시대에도 돌도끼를 사용하고 있었다. 서양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이 원시상태 부족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돌도끼를 선물하는데, 그런 급격한 변화가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그들만의 교육의 가치와 조화로운 삶, 그리고 끝내 공동체마저 무너지는 혼란의 비극을 만들고 말았다.(이경덕 저,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우리는 서구사회가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온전히 해내지 못한 일들을 불과 30년 만에 달성하는 축약의 시대를 살아왔다. 눈부신 경제성장의 욕망은 아직도 맹렬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논리의 중심이고, 그나마 민주주의 역시 초고속의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런 와중에 사람다움과 가치 있는 삶의 질서 같은 순환적 체계는 안중에도 없었고,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 미성년 노동 같은 불평등과 불균형의 사각은 고쳐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19년 7월 16일부터 직장에서의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지극한 `상식'이 법(근로기준법)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된다. 노동부의 매뉴얼에 담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는 `사회통념에 비춰볼 때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동이 사회 통념상 문제가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애매하기 그지없다. “진리란 그것 없이는 특정한 종의 살아있는 존재들이 더 이상 살지 못할, 그런 오류의 한 양식”이란 니체의 말을 떠나 언제 우리가 `객관적 진리'와 `삶의 유용성'사이에서 망설였던 적이 있었는가. 멀리 있는 진리 대신 가까이 있는 삶의 유용적 욕망, 즉 경제성장과 흔하게 반복되는 인간에 대한 권리 찬탈의 세상에서 그놈의 사회통념은 도대체 어디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온몸이 바늘로 찔리는 고통의 시선, 무서운 일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유서를 써 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직장인의 유서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직장의 유구한 질서를 위협하고 경영에 위기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민주적 푸념과 반항이 당당하게 기사화되는 현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인간의 권리도 존중되는 성숙한 가치를 동반할 수 있는 세상은 법을 통해서만 강제되어야 하는가.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상식'이 모자랐던 나의 과거와 대한민국의 직장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진정한 참회록을 쓰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2019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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