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산속에 들어앉은 괴산 孤山亭
외로운 산속에 들어앉은 괴산 孤山亭
  • 김형래 강동대 교수
  • 승인 2019.07.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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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속리산 비로봉(毘蘆峰 :1021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한 달천(達川)은 북쪽으로 흘러 보은·괴산을 지나면서 주변의 지류와 합류하며 충주에 이르러 남한강에 흘러든다. 구룡천과 화양천이 합류하는 청천면에서는 청천강(靑川江), 쌍천(雙川)과 음성천(陰城川)이 합류하는 괴산읍에서는 괴강, 충주시 달천동에 이르러서는 달내강이라 불린다.

“산 좋고 물도 좋고 인심도 좋다”라고 박두진 시인이 노래한 괴산은 물을 따라서 경치 좋은 곳이 많다. 그중 괴강 양측 기슭에는 아름다운 경관이 산재해 있는데, 고산정·은병암·창벽·영객령·황니판·제월대·관어대·영화담·고산정사를 고산 9경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전집(星湖全集)』에서 고산정 일대는 푸른 절벽과 맑은 강물 덕분에 `호서의 절경'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 웅화(熊花)의 `고산정사기(孤山亭舍記)'와 주지번(朱之蕃)이 쓴 `은병암(隱屛巖)'과 `제월대(霽月臺)'의 석각으로 인하여 천하의 `명승'이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도 고산정 동남쪽 능선 끝에는 서너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는데, 한쪽 구석에는 `제월대(霽月臺)'란 각자(刻字)가 수줍은 듯 숨어 있다. 제월대에서 내려다보면 언덕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괴강과 주변의 수려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산정(孤山亭)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자의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주위로는 머름형태의 평난간을 설치하였다. 전체적인 건물의 형태는 장식을 배제하여 간결하게 느껴지는데, 가구를 견실하게 짜 맞추고 있다.

고산정은 유근(柳根, 1549~1627)이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유근은 제월리 일대의 풍광에 매료되어 고산정사(孤山精舍)라는 별서(別墅)를 짓고 기거하였다. 고산정은 `고산정사'의 일부로 그 주변으로 장송(長松) 수백 그루를 심고 정자를 지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만송정(萬松亭)이라 하였다. 광해군 때 국정의 어지러움을 피해 이곳에 은거하면서 고산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고산정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내려오는 산세도 없고 다른 산과 연결도 되지 않으며 평야에 우뚝 솟아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고산(孤山)이라 부르고 있다. 정자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정자 안에는 현판, 기문(記文), 시판(時版)이 걸려 있다. 「고산정(孤山亭)」 현판은 완산(完山) 이원(李元)의 글씨이고, 정자 안의 「호산승집(湖山勝集)」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番1558~1624)의 글씨라 전해진다.

주지번은 1606년(선조 39) 조선 측 원접사(遠接使)였던 유근의 부탁으로 <고산은거도>를 보면서 고산정 일대를 `호산승집(湖山勝集)'으로 표현하였다. `湖山勝集'에서 `湖山'은 “호수와 산봉우리”라는 의미로, 당(唐) 원진의 <酬鄭從事四年九月宴望海亭>시에 “湖山四面爭氣色, 曠望不與人間同(호수와 산봉우리가 사방에 푸른색을 다투고, 멀리 바라보니 속세와 다르더라)”라고 한데서 찾을 수 있다. 호수와 산봉우리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 군데 모여 있는 경관이라는 의미로 고산정 일대가 집경(集景)의 경지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광해군 1년(1609)에 명나라 사신 웅화(熊花, ?~1649)가 지은 「고산정사기(孤山精舍記)」도 뛰어난 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래의 편액들은 조선말기에 일제(日帝)가 강탈해 가져갔다고 전해지므로 현재 걸려 있는 편액은 후대에 다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하튼 정자 안에 걸려 있는 현판, 기문(記文), 시판(時版)을 통해 다시 고산정 일대의 경관, 산수자연의 미학적 해석, 양국 사신들을 통한 당시 사대부들의 공간인식 등을 알 수 있으며 지금도 여기저기 남아 있는 당시의 흔적이 고산정 일대를 역사의 향훈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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