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나팔꽃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9.07.10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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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송 수 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鐘(종)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 작은 풀줄기도 나팔꽃엔 길입니다. 잡을 수 있는 것이면 크고 작음을 상관 않고 의지해 자랍니다. 가늘고 긴 초록손을 내어 허공을 더듬는 덩굴의 길은 영락없는 더듬이입니다. 뻗어나가려는 의지는 본능의 힘이고 길입니다. 그물처럼 쫙 펴진 초록손가락 사이로 나팔꽃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렇게 길을 만들고 꽃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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