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원과 신라타운
도시공원과 신라타운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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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몇 달 전 도시재생과 관련된 공개 행사를 치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특강과 설명이 끝나고 사회를 보던 나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고 청중들에게 권했다. 주민이자 도시재생대학 수강생 한 분이 손을 들더니 “서울은 도시재생에 대해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청주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해결할 방안이 있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서울의 인구가 몇이고, 청주의 인구는 얼마인가?”라고 되물었다. 그 한 마디에 100여명이 넘는 청중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는 표정을 짓는 바람에 짓궂은 질문의 예봉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95%를 남기고 5%를 개발한다고 해도 반대하겠다는 도시공원에 대한 박원순 시장의 생각은 서울에서만 맞다. 서울이 이미 초개발을 넘어서 극개발의 상태로 치달을 만큼 감당할 수 없는 포화상태의 도시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서울은 95%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무조건 공원으로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게다가 지방정부의 예산 차이를 비교한다는 것은 지극히 무모한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라와 정부의 예산을 소중한 내 돈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의 흐름에 둔감하다. 세금이라는 것은 낼 때 인색하고 받을 때는 풍성해야 한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에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격언처럼 여긴다. 70%도 좋고 95%라도 상관없다. 그저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가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모든 (중앙과 지방정부의)예산은 납세의무자 모두에게 고스란히 재원 마련의 부담이 돌아가는 것은 남의 일처럼 여긴다.

도시공원이 도시의 허파 기능을 맡고 있음은 흔들릴 수 없는 진리다. 최악의 미세먼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충북지역의 딱한 사정은 대부분 속도와 어지러움이 가득한 개발,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수도권의 대기상태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울에 더 많은 도시공원과 녹색 공간, 그리고 오염물질 배출의 차단과 더불어 극단적으로는 지방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 아닌가.

청주시 울량동과 사천동에 있던 신라타운아파트는 녹색공간이 가장 풍성한 곳이었다. 이 아파트의 위치는 특히 옥산과 오창의 들녘을 거치는 북서풍이 청주 도심으로 진입하는 통로나 다름없다. 그러나 재건축 명목의 개발행위로 대부분의 나무들이 속절없이 베어질 때, 이를 안타까워하거나 도심 숲이 사라지지 못하게 행동하는 녹색 환경주의자들을 찾아볼 수 없었고, 매일 그 옆을 지나는 나는 나무들의 신음소리와 벌거숭이 붉은 땅의 눈물을 보는 듯해 가슴이 저린다.

공원일몰제가 현재 지역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내 주머니 속 내 돈과 공적자금 사이 인식의 머나먼 거리처럼 그 일의 근본적인 원인과 과정의 부조리를 따져 볼 생각도 별로 없다. 공원일몰제의 결정은 무려 세기를 달리하는 1999년의 일이다. 그 해 헌법재판소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2000년 7월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한 대로 20년 동안 시설을 만들지 않으면 그 결정의 효력을 잃는 것으로 법이 개정된 것이다.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방정부를 질책해야 하는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

공원일몰제가 헌법불합치 결정된 것은 사유재산보호라는 자본주의와 헌법 정신에서 비롯된다. 도도한 토지자본주의의 탐욕적 속성이 반영된 셈이다. 협치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생각이 대립과 갈등의 양 극단이 여전히 공유하고 있음은 다행이다. 다만 민간에 의한 개발과 보존의 극대화의 대안이, 보존의 원칙 고수, 재정 상태를 감안한 민간개발의 통제로 바꿔 제시했다면 조삼모사로 받아들여졌을까.

토지를 보지 말고 나무를, 생명을 먼저 살피는 사고방식의 전환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시민 한 명마다 온전하고 소중하게 관리되는 나무들, 그 수목의 철저한 조사와 등록, 관리를 통해 땅보다 나무에 탈이 나지 않도록 한다면, 그리고 그 나무가 사라지는 일을 온몸으로 거부한다면 푸른 숲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을까. 생명이 토지자본의 욕심에 앞서는 세상, 청주가 그 이름으로 빛날 수 있는 길은 아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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