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전의 아픈 기억
69년 전의 아픈 기억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9.07.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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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6·25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참하고 슬픈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나라를 지키려다 숨진 국군이 있는가 하면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도 있다. 1949년 6월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이들을 계몽·지도하고자 조직된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6·25전쟁 초기에 집단 희생된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이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공포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출범했다. 진화위는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해 국가차원의 희생실태를 파악하고, 유해발굴을 통한 진실을 규명하는 한편 위령화해사업의 기초적 토대 마련을 위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했다. 유해발굴은 2007~2009년의 3년간 전국 13곳에서 이루어졌다.

이 중 필자는 청주시 남일면 고은리 분터골과 남일면 두산리 등 2곳 4개 지점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했다. 이곳은 1950년 7월 4일~7월 11일 사이에 청주경찰서와 청주형무소에 소집·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들이 집단희생된 후 가매장하였음이 진화위의 현지조사와 구슬증언으로 확인된 곳이다.

유해발굴은 2007~2008년에 이루어졌다. 2곳의 유해매장지는 동일 능선상의 동서쪽에 형성된 계곡부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자연지형으로 은폐된 지형구조를 갖춘 곳이다. 분터골 1지점 유해매장지 발굴 결과 능선 끝자락에 자연지형을 따라 길이 32m, 너비 2m 범위에 일렬로 118구의 유해가 집단매장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매장자세는 얼굴이 땅바닥을 향하고 엎드린 자세였다. 매장된 유해는 무릎이 굽혀진 채 엉덩뼈 위에 두 손이 X자형으로 놓인 상태, 다리가 굽혀져 V자형으로 뉘인 상태로 매장된 유해, 엉덩이와 목등뼈에 탄두가 박힌 채 출토된 유해 등이 최대 6겹으로 중복 매장되어 있었다. 유해와 함께 출토된 유품은 총탄류(M1소총·칼빈소총· 권총), 신발류, 고무줄, 빗, 단추, 보철, 옷감, 삐삐선 등 410점이다.

이런 유해발굴로 볼 때 희생자들은 일렬로 줄지워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뒤에서 발사된 총탄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가늠된다. 69년 전 이맘때 일어난 슬픈 역사의 흔적이고, 아픈 기억의 현장이다. 전쟁상황 속에서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이었다.

희생된 사람들의 나이는 대부분이 20~30대로 사회적으로 한창 활동할 나이에 속하는 계층으로 밝혀졌으며, 키는 평균 165cm이고 절름발이와 안짱다리도 있었다. 여성은 1명이다. 유해발굴 당시 청주, 일산, 인천, 서울, 대구,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발굴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은 노출된 많은 유해 중 아버지, 남편이 있을 것으로 믿고 오열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연좌제 굴레에서 고통받으며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수십 년을 지내야 했던 유족들이 토해내던 울분에 눈시울만 붉어질 뿐이다.

또한, 유해발굴 중 3번의 자문회의를 개최했는데, 매번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천둥과 함께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 천막이 날아가고 유해매장지에 곧게 선 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지기도 했다.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한 듯해 섬뜩했었다.

69년 전 어둡고 외진 분터골 골짜기까지 온 사람은 누구이며, 왜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희생시켰는지, 무엇 때문에 은밀하게 희생되어야 했는지, 진실은 무엇인가. 진화위 조사결과 전국의 유해매장지는 168곳이나 현재 10% 정도만이 유해발굴이 이루어졌다. 유해발굴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통해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유해발굴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이다. 진실조차 규명되지 않으면 진정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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