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남기고 간 그리움
추억을 남기고 간 그리움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7.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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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그리운 여름날 한 편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헐렁한 멜빵 바지에 운동화차림으로 일상일탈의 행복감에 젖어 안동으로 떠나는 여행, 흥분되는 마음을 부여안았다. 두근두근 설렌다. 안동은 제2의 고향만큼 생각만 해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불혹을 앞두고 삶의 의욕이 떨어지면서 심한 갈등 속에 부초처럼 떠도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여행지가 안동이었고 그곳에 매료되어 대 여섯 번 방문하였음에도 안동을 생각하면 언제나 달뜬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설렌다.



안동, 안동댐의 원이 엄마의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는 월영교, 조선시대 한 여인이 남편을 잃고 관속에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만들어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가 발견되었다. 내용 중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라는 구절이 항상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라는 마지막 연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현대판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는 듯 애절하다.



안동댐을 벗어나면 선비의 문화가 깃든 고풍스런 군자마을이 있다. 한 폭의 그림같이 산기슭에 이건(移建)하여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안동댐 조성에 따라 수몰을 피해 한옥과 유적지를 옮겨 놓은 곳이다. 그늘나무가 사계를 자랑하며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고 병풍 같은 자태로 산기슭에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이곳은 저절로 명상에 잠기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호수를 이루고 있어 풍광이 아주 빼어난 곳이며 선비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선하게 그려지는 군자마을, 그 중 계자난간을 두른 반 누각형태의 읍청정은 나를 한동안 머물게 했다.



김부의의 호인 읍청정, 곱게 퇴색된 나뭇결과 색이 고가의 운치를 더하는 툇마루 계자난간의 곡선의 미는 단순하면서도 고고함과 단정함이 묻어난다. 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나무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군데군데 옹이가 박혀 한층 더 화려함을 더한 기둥이 마루 중간에 앉은 것 또한 독특하다.

무엇보다 요즘 현대식 건물은 대부분 기초공사 시 바닥을 반듯하게 만들어 수평을 잡아 건축설계 한다. 한옥의 특징 또한 바닥에 있다. 서양건축의 기준점이 바닥이지만 한옥의 건축물의 기준점은 ‘도리’라고 한다. 읍청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닥이 기울어져 있다. 평지가 아닌 산기슭의 기울어진 그 상태에서 주춧돌 높낮이를 조정하여 앞면을 들어 올려 낮은 누각형식의 마루이고 뒷면은 바닥에 닿게 하여 방을 앉혔다.

생긴 자연그대로에 한옥을 앉힌 읍청정, 마루 앞부분의 분합문을 들어 올려 너른 대청을 위풍당당하게 보여주는 읍청정, 돌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는 읍청정은 섬돌을 밟고 마루에 올라오도록 되어 있다. 섬돌 위에 반듯하게 벗어놓은 선비들의 신발을 상상하면 금방이라도 누마루 난간에서 선비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월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빛바랜 창호는 고향처럼 포근하게 폭 안긴다. 양반의 가풍을 오롯이 보여주는 이곳, 산세가 수려한 곳에 정자를 짓고 멀리 바라보는 풍광을 음미하면서 선조는 누마루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에 더 신중을 기했지는 않았을까.

고요한 마음이 저절로 드는 군자마을, 모든 일이 후련하게 뜻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고 답답할 때 애가 타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리움을 찾는 이곳. 선비들의 흔적이 담긴 툇마루에 걸터앉자 과거로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쉬 일어나지 못하게 점점 매료되고 있으니 내 어찌 이곳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겠는가. 먼발치 점점 길어지는 처마그림자, 긴 그림자 위에 또 하나의 추억을 잇대어 놓고 가만가만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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