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 야쿠바와 사자
용기 - 야쿠바와 사자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6.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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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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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에 한 번씩 `그램책테라피'모임이 있다. 그림책을 읽어가거나 토론 논제를 뽑아가거나 하는 성가신? 모임은 아니다. 그저 함께 테라피스트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나와 연결고리를 찾아내 수다를 떨면 그만이다. 한동안 일이 많고 마음이 분주한 탓에 참석하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그날의 주제는 `용기'였다. 모임 장소로 이동하면서 나를 잠시 돌아본다. `용기'가 필요한 때가 있었나, 나는 얼마나 용기를 내 보았나, 용기란 무엇일까, 상념에 잠기다 보니 프랑스 철학자 미셀푸코의 말년을 사로잡았던 개념 `파레시아(parrhesia)'가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 단어 `파레시아'는 `모든'을 뜻하는 `pan'과 `말'을 의미하는 `rhesis'가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남김없이 모두 다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진실의 여러 측면에 대한 언어적 개입 행위로서의 `파레시아'는 용기의 덕목을 소환한다. 진실 전체를 말하려는 주체의 의지에는 때로 생을 거는 용기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특히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도 있는 순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아프리카 어느 작은 마을에서 축제준비가 한창이다. 전사가 될 소년들을 가려내는 성스러운 날이기 때문이다. 소년 야쿠바에게도 그날이 온 것이다. 전사가 되려면 모두에게 용기를 보여야 한다. 혼자서 사자와 맞서야만 하는 것이다. 무섭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를 걷고 골짜기를 건너고, 언덕을 넘고, 온몸으로 거친 바위와 숲, 바람, 그리고 가끔은 물을 헤쳐나가야 한다. 야쿠바는 긴 시간을 숨어 사자를 기다린다. 그러나 야쿠바 앞에 나타난 사자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자의 깊은 눈동자가 말을 걸어온다. “네가 본 게 맞다. 난 피를 흘리고 있어, 사나운 적수를 만나 밤새 싸웠거든, 힘이 바닥났으니 넌 손쉽게 날 해치울 수 있겠지. 비겁하게 날 죽인다면, 넌 형제들에게 뛰어난 남자로 인정받겠지. 만약, 내 목숨을 살려 준다면 넌 스스로 고귀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는 거야. 어느 길을 택할지 천천히 생각해도 좋아, 날이 밝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야쿠바는 이른 아침, 망설임 없이 마을로 향했다.

야쿠바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싸늘한 침묵에 휩싸였다. 야쿠바의 친구들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전사가 되었다. 야쿠바에게 주어진 일은 마을 외딴곳에서 가축을 지키는 것이었다. 마을의 가축을 습격해오던 사자들의 발걸음이 끊긴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우리는 흔히 `용기'를 생각할 때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보통 마음속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용기 내지 못해 일을 그르치거나 마음에 상심이 남은 날은 두고두고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이날 모임에서 함께 읽은 `용기'에 관한 이야기는 숨이 멎을 정도의 충격과 감동이 있었다.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이다. 소년 야쿠바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비겁한 승리로 `용기'를 검증받고 싶지 않았던 거다. 진실 전체를 말하고 싶은 마음이 소년에게 없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야쿠바가 선택한 용기는 싸우지 않는 것, 진실이 변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자신의 `용기'를 지킨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진정한 `용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스로를 탁월함으로 이끈 소년에게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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