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기관, 사이비 과학자에게 내린 희망 고문
영구기관, 사이비 과학자에게 내린 희망 고문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9.06.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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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내가 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이 매우 두꺼운 논문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자기 논문을 읽고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영구기관에 관한 것이었다. 읽어볼 필요도 없는 논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 긴 논문을 쓰고 나에게까지 보내는 그 열의까지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보기에는 매우 논리적이었다. 어떤 논리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내가 찾아내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됐건 이 논문은 틀린 것이다. 비록 내가 당장 모순점을 잡아내지 못했다고 해도 엉터리 논문이 분명했다..

논리적인 사고를 믿는 나는 왜 이 논문에 대해서 논리보다는 직관에 의존하고 있을까? 그것은 나의 지식보다는 수많은 과학자의 지식을 더 믿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이라는 것은 과학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구기관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 불가능한 것을 아무리 교묘한 논리를 동원해 포장한다고 해도 그 논리가 완전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논문을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중간에서 포기해 버렸다. 헛수고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영구기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장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유혹이다. 하지만 과학에는 에너지 보존법칙이라는 난공불락의 법칙이 있다. 에너지는 절대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이론이 옳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사례를 통해서 증명됐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지금의 과학이 서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과학에 대한 열정만 앞서는 사람들은 이 영구기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거나 만들고 있거나,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자기의 인생을 거는 사이비 과학자들이 수백만 명은 넘을 것이다.

영구기관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역사가 깊다. 역설적이게도 에너지 보존 법칙이 나오면서 영구기관에 대한 집착은 더욱 높아졌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영국은 온갖 과학적인 발명품들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영구기관을 발명했다는 사람들도 무수히 나타났다. 그때는 런던은 물론 뉴욕에도 심심치 않게 영구기관 시연회가 열리곤 했다.

옛날 영국에서 영구기관 공연을 통해서 돈을 많이 번 어떤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영구기관을 시연해 보이면서 돈을 벌었는데, 사실은 사기꾼이었다. 영구기관 장치 속에 다람쥐를 몰래 숨겨두고 다람쥐가 돌리는 것을 영구기관인 것처럼 속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다 속아 넘어갔는데 문제는 자기 조수 겸 애인이었던 어떤 아가씨와의 불화 때문에 숨겨둔 다람쥐가 들통나면서 이 사기극은 끝이 났다고 한다.

과학이 비록 진리는 아닐지라도 엉터리는 더더욱 아니다.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도 두 종류다. 한 부류는 과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과학을 무시하는 부류다. 둘 다 과학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 진리가 아닐지는 몰라도 그렇게 쉽게 틀릴 수 있는 이론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영구기관은 매력적이다. 정신적으로도 매력적이지만 되기만 한다면 떼돈을 벌 수 있으니 속물들에게는 더더욱 매력적이다. 하지만 영구기관이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불가능한 장치다. 과학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영구기관의 이 매력은 너무나 강렬해서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걸고 영구기관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이 지구에 넘쳐나는 것이다.

영구기관에 대한 유혹은 과학을 모르면서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신이 내린 희망 고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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