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숲길
유월의 숲길
  •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 승인 2019.06.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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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한택식물원에 갔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입구부터 초록의 푸르름에 눈이 시원해진다. 유월의 식물원은 온통 초록빛이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청량감을 더 했고 초록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가 쌓인 피로를 풀어 주고 마음까지 정화한다.

봄에는 꽃들이 지천이겠지만 지금은 초록의 잎들이 눈이 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꽃들이 만개했을 때도 좋았겠지만, 유월 초록의 숲길도 아름다웠다. 마침 일행 중에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있어서 일일 숲 해설가인 듯 꽃나무들 이름도 알려줘 유익했다.

초록의 숲과 숲 향기도 좋았지만, 오늘 방문은 다른 의미가 있었다. 십여 년을 함께 일하던 동료 중 두 분이 이달 말로 퇴직을 하게 되어 겸사겸사 떠나 온 워크숍이다.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에서 방문지도사로 일하던 선생님들이다.

방문지도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한국어, 부모교육, 자녀생활 지도를 한다.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와서 가족 외에 제일 먼저 만나서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생활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한국어를 배워야 하고 다문화센터 이용이 어려운 대상자들을 방문하여 한국어를 지도한다.

시간이 흘러 아기를 낳게 되면 부모 교육 서비스를 받는다. 결혼이민자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면 한국어나 부모 교육 서비스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며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또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자녀들이 미래에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소중한 인재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십 년 동안 전국 방문지도사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다문화 가족을 위해 봉사에 가까운 헌신을 했지만, 올해부터 정년제가 도입되어 갑자기 많은 지도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년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문화가족 방문지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60세 정년은 현실성이 부족해서 아쉽다.

우리도 이달 말로 두 분의 지도사를 떠나 보내야 한다. 아쉬움에 우리끼리 위로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떠난 짧은 여행인 셈이다. 숲길을 걸으며 그동안 우리가 했던 많은 일에 대해 돌아봤다. 한국사회에 잘 정착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대상자들을 보면 보람도 있고 뿌듯하다. 반대의 경우에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그렇게 지난 십여 년간 많은 대상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맡은 바 업무에 충실했는데 다문화 가족을 위한 정책 지원과 달리 종사자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한 편이다.

식물원의 나무들처럼 초기부터 잘 정착하여 꽃을 피우고 푸르게 성장하고 단풍이 들 듯 알차게 가꾸고 싶다. 그들도 종사자인 우리도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 가기를 바란다. 유월의 숲이 주는 푸르름과 여유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소담스레 피어나는 수국꽃 향기를 맡으며 그렇게 유월의 숲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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