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기적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6.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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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가득한 욕심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기까지 우리는 많은 망설임과 의심을 거쳐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선 다음에야 용기를 낼 수 있다.

얼마 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한 권을 만났다. 히가시노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으로 날아든 고민상담 편지, 처음에는 아이들의 장난기 가득한 고민 상담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아이들의 고민이라고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는 진지한 답을 주었다. 그 뒤로 정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내뱉기 힘든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이 많아졌다.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그들에게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뒷문의 우유 상자에 답장을 넣어 준다. 그것은 할아버지 자신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도록 비밀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다.

이 책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고민상담 역할을 토매한 세 도둑 청년들이 이어받는 데 있다. 인생 상담을 받아도 시원찮을 그들이 자신의 잣대로 상담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이었던 상담이 점점 그들을 진지하게 이끌고 고민을 하게 만든다. 결국에는 세 도둑 청년들 또한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아파한다. 어쩌면 약지 못하고 어벙하기까지 한 세 도둑 청년들을 나미야 잡화점으로 이끈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환광원', 그곳은 고민을 털어놓은 편지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마음을 옴시레기 보듬어 준 잡화점 주인의 공통분모가 되어주는 장소이다.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 그곳을 세운 이는 다름 아닌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사랑한 `아끼꼬'라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잡화점으로 이끌려온 세 명의 도둑 청년 또한 환광원 출신들이니 그곳이 이야기의 시작점이라는 것은 의심해 볼 여지가 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책의 두께도 그렇고 페이지 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짧은 시간에 쉬이 읽힌 책이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책읽기를 싫어해 작품을 쓸 때 자신을 독자로 정해 놓고 그런 자신이 중간에 책을 내 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 했다는 심정을 2012년 `주오코론문예상'을 수상하며 전했다. 대부분 작가들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글을 쓸 때면 독자가 내 글을 읽고 어떤 마음이 들까만 생각했지 나 자신을 생각하고 쓴 글은 없는 듯하다. 히가시노게이고의 말을 가슴에 담고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아쓰야가 백지로 우편함에 넣은 편지에 대한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의 마지막 상담 편지다. 누군가의 작은 상처도 그냥 넘기지 않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답이다. 신기하게도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는 내게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은 요즘 들어 수업하며 꿈이 없다는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어투다.

`아직 꿈이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그것은 너희에게 아무것도 쓰여 진 것이 없는 백지의 세상이 있다는 것이니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해봐.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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