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츠 에셔
모리츠 에셔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9.05.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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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원의 극한 Ⅳ, 천국과 지옥(Circle Limit Ⅳ ‘Heaven and Hell’), 1960
원의 극한 Ⅳ, 천국과 지옥(Circle Limit Ⅳ ‘Heaven and Hell’), 1960

무엇이 먼저 보이는가? 선인은 천사가 먼저 보이고, 악인은 악마가 먼저 보이는가? 당신은 선인인가, 악인인가? 네덜란드 태생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모리츠 에셔의 판화작품 <원의 극한 Ⅳ, 천국과 지옥>이다.

에셔는 기묘한 시지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그래픽 아티스트이다. 복잡하게 상호 결합되어 있는 상반된 패턴들의 반복적인 구조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각적 착각을 표현한 작품들은 그를 다른 어떤 작가와도 구별 지어주는 아이콘이다. 에셔는 에스파냐 여행 중 보게 된 알함브라궁전의 아라베스크 양식의 모자이크를 보고 타일과 타일 사이의 경계선이 가지는 이중성에 매료되어 평생 기하학적 원리에 따른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기법에 몰두하게 된다. 말하자면 수학적 계산이 그의 작품이 미디어인 셈이다. 작품 <천국과 지옥>은 그 한 예로서 언뜻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나 일정한 패턴들이 규칙적이고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칭적인 구조는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특징으로 갖는 프랙탈구조를 연상케 한다.

에셔는 이 작품을 위해 똑같은 모양의 도형을 이용해 어떠한 빈틈이나 겹침도 없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테셀레이션(tessellation)기법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그림에서는 형태와 배경이 확연히 구분되고 보통은 배경이 형태에 종속되는 형식을 취한다. 천사와 악마의 윤곽이 서로 상대의 모양을 만들어주며 한 화면 속에서 교대로 전경과 배경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무엇을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 천사와 악마라는 이율배반적인 두 요소가 규칙적으로 병치되어 원의 정 중앙로부터 멀어지면서 그 형태가 점점 작아지면서 무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연의 이원성을 다룬 작품이다. 삼라만상의 존재양식은 이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천국과 지옥, 선과 악, 따듯함과 차가움, 밝음과 어둠 등등과 같은 이원적인 요소들은 동전의 양면이 한 면에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공존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비록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한 화면에 있을 수는 없지만, 동전이라는 한 몸체에 있는 것과 같이 에셔는 선과 악으로 대립되는 관계를 이율배반적인 수법을 통해 “대립의 짝들은 파괴적이 아닌 서로 공존하는 관계”라는 우주관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에셔는 이 작품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다”라는 사유방식으로 서로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는 존재론적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다.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우리 모두는 내면의 세계에 상반되는 모든 이율배반적인 요소들을 동시에 지닌 야누스이다. 이 작품에서 에셔는 교묘한 계산으로 배경이 또한 형태가 되게 만들었다.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어느 쪽으로든 해석할 수 있다. 천사를 중심으로 보면 천국이고, 악마를 중심으로 보면 지옥이 된다. 당신은 무엇을 중심으로 보고 싶은가? 당신의 세계 안에는 천사와 악마 중 무엇이 더 많은가?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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