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의 나라 조선, 그리고 충신과 선거
공신의 나라 조선, 그리고 충신과 선거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9.05.2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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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내년 4월 15일이 무슨 날일까? 21대 국회의원 총선일이다. 1년도 남지 않아 정치권과 언론은 벌써부터 총선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데 정작 유권자들은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에 무관심하면 그 대가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 사리사욕이나 정파의 이익, 또는 이념에 사로잡힌 가짜가 아니라 진짜 국민을 위한 충신인 선한 이웃 같은 후보자를 말이다. 왕조시대에 신하는 왕을 위해 헌신했다면 민주주의 시대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충신(忠臣)이란 충성스러운 신하를 말한다. 충신은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하지 못할 때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고, 자신보다는 나랏일을 우선한다. 특히 나라가 망할 때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여 자결하거나 은둔하는 등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한다. 대표적인 예로 백이와 숙제, 정몽주. 계백 등이 있다. 또한 반정 등으로 인해 부당하게 임금이 폐위될 경우 목숨을 걸고 신의를 지키기도 한다.

그리고 공신(功臣)은 국가나 왕실에 특별한 공훈을 세운 신하를 일컫는다. 공신은 크게 종묘에까지 배향되는 특권을 누리는 배향공신과 특별한 공훈이 있는 훈봉공신으로 분류된다. 조선 시대 공신들에게는 아호를 부여하였고, 동시에 전답과 노비를 하사하고, 자손들에게 관직의 혜택을 주었다. 그리고 그 자손이 죄를 지었을 경우 죄를 감해주는 특전도 부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을 시작으로 영조 때의 분무공신에 이르기까지 총 28회의 공신에 대한 책봉이 있었다. 제1,2차 왕자의 난 후의 정사(定社)공신과 좌명(佐命)공신이 책봉되었다. 이어 세조 집권과정에서 정난(靖難)과 좌익(佐翼)공신, 이시애의 난 후에 적개(敵愾)공신이 있었다. 예종 때는 남이의 옥사와 관련하여 익대(翊戴)공신이 나오고, 성종 때는 즉위에 기여한 이들에게 좌리(佐理)공신을 책봉하였다. 선조 때 임진왜란 후에 내린 선무(宣武)공신, 이몽학의 난 평정 이후에 청난(淸難)공신이 있었으며,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뒤 분무(奮武)공신이 책봉되었다. 한편 왕을 수행하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원종공신(原從功臣)'이 있는데, 대부분 정식으로 공신이 된 사람의 자제나 사위, 또는 그를 수행한 자들에게 봉해졌다. 그들 공신이 만든 나라가 바로 조선인 것이다.

충신과 공신은 왕과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점에서 존경받아야 하고, 훌륭한 분으로 우리는 귀감으로 삼는다. 그러나 충신과 공신의 가장 큰 차이는 대가와 보상이다. 공신은 대가나 보상을 목적으로 일한 사람, 그리고 한 일에 대해서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충신은 보상과 상관없이 나라와 임금을 위해 헌신한 사람, 오히려 대가를 받지 못한 사람을 충신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더 존경하고 높이 생각한다.

충신과 공신 중에 어떤 신하가 많아야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까? 특히 민주주의 시대인 이 시대에는 충신이 필요할까? 아니면 공신이 필요할까? 분명한 것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는 모든 후보자들이 자신을 충신으로 포장할 것이다. 충신과 공신을 구별하는 투표라면 얼마나 행복한 유권자일까? 충신이든 공신이든 자신이 약속한 내용을 성실하게 지키고, 주민을 섬기고, 지역을 위해 애쓰는 인물이 선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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