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영화를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파리가 영화를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 김태선 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물리교육학 박사
  • 승인 2019.05.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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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물리교육학 박사
김태선 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물리교육학 박사

 

한참 독서삼매경인데 딸의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파리가 집안에…. 아우, 어떻게 해.”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옛날을 회상해봤다. 어렸을 적에는 파리가 없는 곳이 없었는데 어느새 집안으로 파리 한 마리 들어와도 파리채를 찾으며 호들갑을 떠는 세상이 되었다. 굼뜬 정신으로 다시 책에 눈을 돌리는데 딸에게 놀라 도망친 파리가 피난처라고 택한 곳이 내가 있는 곳인지, 어느덧 책 주변을 날아다니며 윙윙거린다. 몇 번 잡으려고 하다 포기하고, 영화를 보고 있는 식구들과 합류했다. 그런데 날쌔게 도망갔던 파리가 그새 날아와서 끊임없이 앞다리를 비비며, 바깥 어디에선가 먹었을 더러운 배설물을 TV화면 사방에 묻혀놓는다.

다시 파리를 잡으려고 시도하는 딸을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에 빠져든다. `파리가 영화를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우리와 같은 장면을 볼 수 있을까?'

파리의 눈을 물리학적으로 살펴보면 사실 파리는 재미있는 곤충이다. 얼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파리의 커다란 겹눈은 0.005초 간격으로 빛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반면 사람의 눈은 20분의 1초의 시간 간격(즉 0.05초)을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파리가 사람보다 10배나 더 세밀하게 빛에 반응한다고 해서 뭔 차이가 있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화는 사실 많은 정지된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 사람의 눈이 시각 잔상 효과로 인해 0.05초 이내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연속되는 화면으로 인식할 뿐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0.05초 이상 벌어지는 시간 간격이 주어져야 화면 1과 화면 2를 각각의 정지된 화면으로 인식할 수 있다. 반면 파리의 신경계는 사람보다 빠르기 때문에, 똑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화면 1이 주어지고 나서 화면 2가 나오기 전까지 커다란 시간적 공백을 알아차린다. 영화관에 있는 파리는 화면 1 정지 장면을 본 후에 갑자기 깜깜해졌다가 화면 2 정지 장면을 보게 되고, 또 깜깜해졌다가 화면 3 정지 장면을 보게 된다. 그래서 파리의 입장에서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깜깜해졌다가 또 다른 사진을 보고 깜깜해지는, 재미없게 반복되는 화면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나 의아할 것이다.

`아니, 파리는 진짜 바보인가보다. 내가 이렇게 잡으려고 했는데도 그새 또다시 주변에서 시끄럽게 윙윙거리네?' 사실, 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파리의 날갯짓 소리인데, 초당 300회 정도 움직인다. 이 주파수는 인간의 가청 영역 내에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사건을 인식하는 파리에게는 초당 30회 정도의 진동으로 들린다. 즉 파리에게는 자신의 날갯짓 소리가 묵직한 기계의 아득하게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이영도의 판타지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하늘누리(하늘에 떠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에 있는 사람이 그 날갯짓 소리를 묵직하게 듣는 것처럼 말이다. 초당 30㎞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는 지구에 있는 우리는 지구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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