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굽이 같은 삶과 충절이 서린 곳 제천 관란정(堤川 觀瀾亭)
물굽이 같은 삶과 충절이 서린 곳 제천 관란정(堤川 觀瀾亭)
  • 김형래 강동대학교 교수
  • 승인 2019.05.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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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김형래 강동대학교 교수
김형래 강동대학교 교수

조선 세조 아래에서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6명의 신하가 있다.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이 그들이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은 사육신(死六臣)에 비교해서, 살아서 절개를 지킨 이들을 생육신(生六臣)이라 한다.

관란정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1397~1463)의 행적과 사상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원호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문종 때는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그러다 단종이 폐위되자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원주로 돌아가 은거했다. 온당치 못한 쿠데타 정권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다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되자 청령포가 발아래 아득하게 보이는 이곳 사내평 언덕 위에 단을 쌓고 초가집을 지은 뒤 `관란재(觀瀾齋)'라 이름 지었다. 이곳에서 원호는 손수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얻은 곡식을 나뭇잎에 쓴 글과 함께 표주박에 담아 물에 띄워 청령포로 흘려보내며 단종을 봉양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침내 단종이 사사(賜死)되자 영월 수주면 무릉리 백덕산 아래 토실에서 3년 상을 치른 뒤 고향 원주로 돌아와 은거하며 살다 세상을 떠났다.

정자의 이름이자 원호(元昊)의 호인 관란(觀瀾)은 「맹자(孟子)」에서 취했다. 맹자는 도의 근본에 대해서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고 했다. 원호가 자기의 거처를 `관란재'라 한 것은 평창강의 도도한 물결을 바라보면서 단종에게 충절을 지키겠다는 마음 아닐까?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원래의 정자는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이 관란정에 올라 당시를 회상하며 그 충절을 기린 한시가 전해져 적어도 1618년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정자는 원호의 후손과 유림이 힘을 모아 1845년(헌종 11)에 다시 세웠다. 정자 근처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영·정조 때 대학자인 이계 홍양호(耳溪 洪良浩, 1724~1802)가 지었다. 일반적인 비문과 달리 붉은색 글씨로 새겨 있는 점이 특징이다. “환란을 만나더라도 평소 모습대로 행동하며 반듯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안다. 죽어야 할 때 죽는다면 마음은 편안하고 덕도 온전해지는 법, 세상에서 태산보다 무거운 것이 있다고 한다. 형세 상 반드시 죽어야 하지만 땅의 형편상 꼭 죽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고 살려고 애쓴다고 해서 나의 인간 됨됨이를 훼손하지 않지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려운 경우도 있다. 삶과 죽음이 비록 길이 달라도 끝내 가는 길이 같다. 요컨대 의리가 있는 곳을 살펴서 올바르게 살거나 죽어야 한다” 비문은 죽지 않고 살아서 끝까지 의리를 지킨 원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정자는 평창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지만 풍류, 관망의 기능보다는 선조(先祖)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서 전체적으로 엄숙한 느낌을 준다.

구한말 유인석의 제천 의병에 가담했던 정운호(鄭雲灝, 1862~1930)는 고향 제천의 풍광을 칠언 율시로 형상화한 「제천팔경(堤川八景)」을 남겼는데, 「관란정의 우는 여울(瀾亭鳴灘)」에서는 단종이 유배될 때 표주박을 띄워 보내며 충성을 보냈던 생육신들의 마음을 그렸다. 아마도 생육신 원호의 충절을 추모하면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일제의 침탈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원호와 단종의 애달픈 사연이 서린 평창강은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으나, 관란정은 찾아오는 발길이 드물다. 조선시대 절개의 상징이었던 생육신 원호의 일생을 반추해 보고 그의 자취를 찾아보는 일은 많은 혼돈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탐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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