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돈보다 진한가
피는 돈보다 진한가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9.05.0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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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다. 혈육의 정이 그 무엇보다도 깊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피는 돈보다도 진한가? 이 질문에 대해선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돈이 피보다도 더 진하고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다. 돈이 피보다도 더 진하다는 사실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보다도, 아무런 돈 걱정 없이 잘 사는 부유층, 특히 재벌가의 유산 상속 과정 내지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극명하게 입증되고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전 회장은 별세 전 “가족과 협력해 사이좋게 이끌라”는 유언을 남겼고, 별세 8일 만에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 회장에 오르면서 경영권 승계가 순탄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진그룹은 조 전 회장 별세 후 경영권 분쟁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발표를 연기하면서 드러났다. 지난 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10일로 예정됐던 2019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발표를 닷새 연기한다며, “한진그룹이 차기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8일 현재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동일인은 기업을 실질적으로 총괄 지배하는 기업 총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대를 이어서 지속되는 경우까지 있다. 한진그룹은 과거에도 조양호 전 회장을 비롯한 2세들이 그룹 창업자인 조중훈 전 회장 별세 후 `유언장 조작설'까지 제기하며 `형제의 난'을 치른 바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도 대를 이어 혈족 간 분쟁이 벌어졌고, 롯데 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현대 그룹도 2001년부터 10여 년 이상 `왕자의 난', `사숙의 난'등의 경영권 분쟁을 겪었고, 두산그룹은 2005년 `형제의 난'을 겪었으며, 효성그룹도 2014년부터 현재까지 2세 간 경영권 분쟁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밖에도 대림, 코오롱 등 굴지의 그룹들이 혈족 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고 SK와 LG, GS, 신세계, LS 그룹 등은 경영권 분쟁을 노출시킨 바 없다.

식구(食口)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한 입이 되어서 밥을 먹는다는 의미다. 아버지라고 해서 밥 두 그릇을 먹고, 딸이라고 해서 밥을 한 그릇만 먹어야 한다면, 이미 식구가 아니다. 딸도 활동량이 많다면 밥 두 그릇을 먹고 아버지라도 활동량이 적으면 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른 물질적 배분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감정 상할 일이 없는 아름다운 관계의 조합이 식구다. 깊은 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눈과 귀와 코와 팔과 다리 등이 서로 혼연일체가 돼서 난국을 헤쳐나갈 뿐, 어느 누구도 자신만 더 편안하고 빨리 구조받기 위한 편법을 쓰지 않는다. 이처럼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주판을 꺾은 사이가 바로 가슴 시리도록 소중한 존재인 식구다.

따라서 한진 그룹의 3세들도 조양호 전 회장의 유언대로, 서로 사이좋게 그룹을 잘 이끌어 가야만 식구고 형제다. 그리고 온전한 식구고 형제일 때 비로소 조양호 전 회장의 진정한 자식이 될 수 있으며, 조 전 회장의 진정한 자식이기 때문에 유산 상속권도 인정받는 것뿐이다. 그러나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비판-비난하며 적당히 세상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욕심 사나운 돈벌레가 꿈틀대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에 별일 없는 것인지, 참으로 돈벌레의 허물을 벗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인지, 탐욕스런 재벌들을 욕하며 그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 깊이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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