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화 `생일' 그리고 `밀양' `마더'
엄마의 영화 `생일' 그리고 `밀양' `마더'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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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창밖을 슬쩍 내다봐도 건너편 집들의 속사정이 뻔히 보이는 저층 아파트. 그곳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여인의 통곡소리. 도저히 그칠 것 같지 않은 단장(斷腸)의 절규를 참을 수 있는 주민이 몇이나 될까.

영화 <생일>에는 도저히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을 아들의 죽음을, 벌써 5년 동안 문득문득 통곡으로 절규하는 엄마와 이를 내버려 두거나, 혹은 그 자리를 피하거나, 문을 열고 다가와 부둥켜안고 위로해주는 공감이 있다.

전도연이 연기한 수호엄마 박순남은 깊이깊이 가라앉아 있다. 남편의 부재중에 감당해야 했던 아들의 죽음. 이후, 순남의 일상은 진도 앞바다보다 더 깊게 무너져 내려 도저히 일어날 기미가 없다. 그녀에게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죽은 자식을 추모하는 `생일'은 더더욱 가당치 않고,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들 `수호'는 오로지 그녀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고장 난 현관 센서등의 불빛은 그녀 홀로 있는 거실에서 제멋대로 켜져 사무치는 그리움을 잇는 경로가 된다. 센서등은 어떤 형상의 움직임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태인데도 함부로 불이 들어오는 것은 고장, 즉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비정상의 상태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서 그리움의 매개가 되는 것은 상상이 분명한데, 영화 <생일>은 도저히 상상에서 비롯된 세계로만 읽을 수가 없는, 불신의 유예(Suspension Disbelief)로 작동한다. 전등 불빛은 그렇게 교감으로 작동하는데, 역시 전도연이 열연한 영화 <밀양>에서의 처연한 햇살과 연동하면서 가슴에 통증을 느낄 만큼 저리게 한다.

이런 가슴 아픈 `엄마의 영화'가 더는 만들어지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충청타임즈를 통해 영화 <밀양>에 대해서 이미 두 차례 글(「밀양(密陽), 그 빛의 다양한 스펙트럼」, 2007년), (「밀양과 곡성, 그 빛과 소리의 변주곡」, 2016년)을 쓴 바 있다. 「밀양(密陽), 그 빛의 다양한 스펙트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용서를 화두로 내세우면서 신과 인간 사이의 갈등과 인간 내면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밝음과 따뜻함으로 상징되는 <빛>이,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아픔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썼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절규하는 주인공 신애의 극단적 절망감은 유괴된 뒤 주검으로 돌아온 자식에 대한 처절한 고통에서 비롯된다. 「밀양과 곡성, 그 빛과 소리의 변주곡」에서는 경제성장과 재산증식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원주민과의 갈등, 그리고 유괴와 살인으로 이어지는 비극과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했다. `거기 은밀한 빛(密陽)에는 인간과 신, 영상으로 은유되는 일종의 환각'을 찾는다.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 그것도 자식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영화적 상상력으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의 김혜자 영화 <마더> 또한 모성애, 엄마의 이야기이다. 2009년 상영된 영화임에도 여태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엄마 없어?”라고 묻는 김혜자의 흐느낌이다. 자기 자식 대신 잡혀 들어간 동팔이를 면회하면서 묻는 김혜자(영화에서 그녀는 단지 그냥 엄마일 뿐 이름조차 없다)의 눈물과 떨림은 극단적인 엄마의 역할, 상상을 뛰어넘는 끔찍한 모순마저 주저하지 않는 모성애의 불편함을 드러낸다.

조금 모자란 자식을 죽이려 했던 엄마의 비극, 그리고 아들을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살인과 증거인멸까지 마다하지 않는 모성애가 정상이 아니듯, 수학 여행길에 죽은 아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 또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깜빡거리는 센서등 불빛을 죽은 자식이 찾아온 흔적으로 죽어도 믿고 싶은 엄마의 고통.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고 진실을 그냥 묻어둘 수 없다. 손 내밀어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로해야 할 지금. 그리고 우리. 어느새 4월이 가고 가정의 달 5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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