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접은 이소(離巢)
날개를 접은 이소(離巢)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9.04.0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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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그날 세윤이가 집을 나갔다. 민재의 쓴소리에 대한 답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민재는 아들 세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것은 세윤이 서른 후반이 되도록 집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남들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데 가정은커녕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한 때는 취업준비생으로 열정을 쏟는듯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 이름은 지워져 가고 있었다. 냉정하게 보면 실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재는 가득 쌓인 세탁물이 세윤의 것임을 보고 신경이 거슬렸다. 게다가 송여사에게 식사를 재촉하며 반찬투정을 하는 광경을 보는 순간 가뜩이나 못마땅하던 차에 민재의 불만이 세윤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민재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 사이로 송여사가 끼어들었다. 이야기의 불꽃은 부자에서 부부로 튀기 시작했다. 민재의 입에서 하숙비를 운운하는 말이 나왔다. 듣다 못한 세윤은 서운함에 집을 나오고 말았다. 민재 또한 송여사에게도 불만이 많았다. 송여사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떠밀어 낼 수만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민재는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자립해서 현실과 부딪치며 사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세윤은 부모 밑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캥거루족처럼 지내는 미혼남이었다. 뚜렷한 직장은 없었지만, 용돈이 필요할 때면 아르바이트로 수입을 만들어 적당히 살아가고 있었다. 언뜻 보면 상관할 일이 아닐 것처럼 비칠지 몰라도 부모로서 그의 앞날을 생각해 보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윤의 처지에서 보면 세상에 태어나 여지껏 함께 살아오던 가족이기에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보면 사실 세윤에게 이만큼 부담없는 곳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산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세윤에게 지금에 현실은 집을 나가 살기도 싫고 집을 나가 살 자신도 없어 보였다. 한편 세윤은 집을 막상 나오고 보니 갈 곳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집을 떠난다면 당장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세윤은 무작정 거리를 배회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늦은 오후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얼마 전까지 서로 취업을 걱정했던 친구였다. 그런데 며칠 전 취업을 했다고 했다. 그 순간 양복을 입은 그가 멋있게 보였다. 자신에게도 저런 기회가 있을지 의문이 갔다. 그가 가고 난 후 또다시 갈 곳을 잃었다. 세윤은 어쩌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변명이라면 일자리 같았다. 하지만 높은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발길은 청하지도 않았는데 걷다 보니 집이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생존의 수단이 상실되었을 경우 가치관의 굴절 현상으로 인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일자리 문제로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삶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이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그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미궁에 빠진 갈등과 불만이 삶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은 시대의 뼈아픈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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