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또 한 분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
역사 속 또 한 분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9.04.01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한다면 세종대왕과 함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우리 역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가능하였다.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나 영화 `명량'을 통해 장군 이순신과 함께 인간 이순신을 발견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였던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또 다른 충무공 김시민(時敏) 장군과 또 다른 주역 이광악 장군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아울러 이들이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인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까?

김시민(1554~1592)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면오이다. 지금의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김충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25세 때인 1578년(선조 11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1년 진주판관이 되었고, 1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진주목사 이경이 병으로 죽자 초유사 김성일의 명에 따라 진주목사로 임명된 김시민은 병기와 성을 수리하는 한편 군사를 모집하여 진주성을 지켜냈다.

왜군은 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정예병 3만여 명을 동원하여 1592년 10월 진주성 공격을 개시하였다. 진주성 전투는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계속되었다. 진주성에는 김시민과 곤양군수 이광악이 지휘하는 3,800여 명의 군사가 있었다.

진주성 성민들의 필사적인 단결과 곽재우·최강·이달 등 각 지역 의병들의 열렬한 성원으로 `진주 대첩'은 탄생하였다.

진주대첩은 전라도 지역으로 진출하려던 왜군의 시도를 좌절시켜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온전히 보전하는데 기여하였고, 조선군과 의병들에게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등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괴산에서 감물 쪽으로 강변을 끼고 가다 보면 왼편으로 괴강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김시민의 묘소와 충민사(忠愍祠)가 있다. 충청북도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충민사는 김시민과 그의 숙부인 충숙공 김제갑(悌甲)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김제갑(1525~1592)은 임진왜란 당시 원주목사로 영원산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2006년 일본의 고서화 경매시장에 출품되어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리하여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가져왔고, 결국 모 방송의 프로그램 `느낌표-위대한 문화유산 74434'와 `문화연대'그리고 진주 시민의 주도로 국민이 성금을 모아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보물 제1476호로 지정된 이 공신교서는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어김없이 일본의 독도 망언 튀어나오고 일본의 침략주의 망령이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등장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가까운 우리 고장의 역사 현장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분명한 역사의식과 나라 사랑의 마음을 새겨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