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리에 걸채여 본 사람은 안다
돌부리에 걸채여 본 사람은 안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3.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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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우리는 매 순간 갈등의 순간과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그동안에 겪었던 경험이나 연습이 결정짓는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이 일인 운동선수들은 낙법을 먼저 배운다고 한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말이다. 잘 넘어지고 잘 일어나야만 다시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상처투성이의 몸이라도 마음만은 강한 선수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넘어지고 난 후 대처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릴 때 참 많이도 넘어졌다. 그래서 손바닥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몸이 약해 죽을 고비도 몇 번을 넘기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남자애들과 놀아도 엄마는 군소리도 없으셨다. 아마도 내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엄마의 방법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오빠들을 따라 산으로 들로 나돌아다니기가 일쑤였던 탓에 몸 여기저기 난 상처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 약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웬만한 상처는 약을 바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었다. 더러 깊은 상처에는 엄마가 타원형의 하얀 동물의 뼈를 갈아 상처에 발라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약효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지 지금도 흉터가 되어 남아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리'는 현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인물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경제 활동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을 때만 존경받는 가장이고, 훌륭한 남편이며, 회사에서 능력 있는 일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존재 이유였다. 적어도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벌레로 변해버리`그레고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해 굶어 죽는 방법을 택한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의지이며 저항이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따르는 법이다. 어떠한 결과나, 결심이 서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에서의 착오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얼마 전 지인의 안타까운 비보를 접했다. 평소 밝은 모습을 보았던 터라 충격이 컸다. 지인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병을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도 보았다. 가만 보면 우리 주위에는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마음의 병은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위의 관심도 매우 필요하다.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선택하기에 앞서 먼저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보면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신호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나 무시해버리게 된다면 그 사람은 존재의 의미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결국 겨우겨우 타오르는 자신의 촛불을 스스로 멈춰버리고 만다.

지금도 우리 앞에 얼마나 많은 돌부리가 남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돌부리가 무서워 미리 겁을 먹거나 포기를 해서는 안 된다. 많이 넘어져 본 사람일수록 다시 일어서는 법을 알 수 있듯이, 돌부리에 걸채여 본 사람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아는 법이다. 부디 앞에 놓인 돌부리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삶의 의미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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