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9.03.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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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의미의 한시 구절이다. 그 어느 해 보다도 올봄에는 한(漢)나라의 궁녀 왕소군(王昭君)의 아픔을 노래한 동방규의 시에 나오는 `춘래불사춘'이란 구절이 가슴을 파고든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외출 시 보건용 마스크 착용 및 대중교통 이용 바란다”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받을 정도로, 화창해야만 할 봄날의 하늘이 온통 미세 먼지로 뿌옇다. 이로 인해 심신이 불편함을 겪고 난 탓일까? 춘래불사춘의 의미가 저절로 확연해지고, 왕소군의 아픔까지도 절로 이해되는 듯하다.

기원전 33년 한나라 원제(元帝)때 궁녀였던 왕소군은 지금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지만, 꽃다운 나이에 흉노의 왕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다. 끊임없이 한나라로 쳐들어오는 흉노족과의 화친을 위해 한나라 원제는 공주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엔 왕소군을 공주라고 속여서 보냈다. 그 과정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원제는 궁녀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집을 쭉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못생긴 모습으로 그려진 왕소군을 흉노의 왕에게 보낼 가짜 공주로 낙점했다고 한다.

원제가 언제든 궁녀들의 얼굴을 살펴보고, 필요할 때 간택할 수 있도록 모든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초상화집을 만든 장본인은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다. 궁녀들은 황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모연수에게 온갖 뇌물을 받치며, 실제 모습 이상으로 아름답게 그려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던 왕소군은 모연수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궁녀들 최고의 미녀였던 왕소군을 가장 못생기게 그려서 초상화집에 실었다. 그 결과 가짜 공주로 선택된 왕소군이 흉노 땅으로 떠나는 날, 원제는 왕소군의 실물을 보고 땅을 치고 후회한 뒤, 거짓 초상화를 그린 모연수를 참수형에 처했다.

이 같은 과정을 겪은 왕소군의 아픔을 동방규는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즉,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노래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창하고 신선한 바람이 건 듯 불어야 할 봄날의 하늘에 온통 뿌연 먼지만이 가득하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아픔이 사무치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봄날의 하늘이 따듯하면서도 신선한 공기로 가득했던 좋은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선 이런저런 실질적인 해결책들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시급한 것은 봄날 하늘에 가득한 뿌연 먼지처럼, 지구촌의 모든 구성원들 가슴속에 가득 차 있는 욕심을 제거하는 일이다.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등 모든 환경 문제들은 인간들의 지나친 탐욕에서 기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듯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3칸밖에 안 되는 도산서당의 완락재(玩齋, 즐거움이 익어가는 방) 창가를 서성이며, 퇴계 이황 선생이 달 밝은 밤에 피어난 매화를 노래한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이란 시가 이토록 절절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것도 미세 먼지 덕이라고 해야 할까? 따듯하고 신선한 봄밤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지 못하는 대신, 퇴계 선생의 시심(詩心)이라도 꿀꺽 삼켜서 마음과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 볼까? `獨倚山窓夜色寒(독기산창야색한) 梅梢月上正團團(매소월상정단단) 不須更喚微風至(불수경환미풍지)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 청량하고,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 떠오르네. 애써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 불어오고, 맑은 향기가 저절로 뜨락에 가득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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