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 아닌 아름다움
보통이 아닌 아름다움
  •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9.03.1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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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차갑도록 맑은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 지난겨울, 충북 중등 사서교사의 모임이 두 번 있었다. 학교 현장과 학생들의 독서수준을 고려하여 중학생을 위한 추천도서를 모아 목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모임에서는 목록 속의 책을 다시 읽고 와서 함께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 중 첫 번째 책이 바로 `산책을 듣는 시간'(정은 글/사계절출판/2018년)이다. 제1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청각 장애가 있는 수지의 성장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한 청소년 소설이다.

10년 전, 친구들과 단편 영화를 찍을 때 동시 녹음을 담당했던 작가는 고성능 마이크를 타고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보다 적은 소리를 듣는다는 이유로 청각 장애라는 단어를 만든 것에 불합리함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은 각자 세상을 느끼는 범위와 방법이 다르고, 각자의 방식이 존중되는 게 당연하다.'라는 작가의 생각과 경험이 장애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 것 같다.

사회인이 되고 나 역시 늘 원했다. 보통의 존재가 되기 힘든 세상에서 보통이 아닌 개개인이 모여 보통의 기준에 맞추어 살기를 원하는 것은 그러길 기대하는 당신의 욕심이 아닐까. 옛날과 비교하지 말고 나와 같기를 바라지 말고 `그럴 수도 있구나'적당히 이해하고 때로는 모르는 척하는 미덕이 있었으면 한다. 이러한 나였기에 이 소설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첫 번째는 소설의 첫 문장이다. `나는 외로움이 뭔지 잘 모른다'라는 첫 문장은 위로의 말들이 넘쳐나는 SNS와 출판물의 홍수 속에서 반가웠다. 첫 문장 뒤로 이어진 문장들이 뜨개질하듯 부드럽게 읽힌다.

아름다운 두 번째는 등장인물이다. 집에서도 항상 화장하고 외출복을 차려입고 시간에 맞추어 다양한 묘비명을 미리 지어두는 할머니,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미스 블랙홀 엄마, 타인보다 언제나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고모, 색깔을 구분할 수 없지만 마크 로스코(모호한 경계의 색채 덩어리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을 표현한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작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한민, 좋아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골든래트리버 마르첼로까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소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세 번째는 배경(아이템)이다. 17층에서 도르래를 타고 내려가야만 갈 수 있는 할머니의 무덤, 할머니의 죽음 이후 짧은 메모를 남기고 자신의 삶과 꿈을 위해 집을 떠나는 엄마,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을 많이 만들라는 고모의 말, 자신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봐 늘 두려워하던 수지, 그리고 무엇보다 제목이 된 `산책을 듣는 시간'은 매력적이다. 산책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한민과 함께 있지만 홀로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침묵과 함께하는 `산책을 듣는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은 수지의 성장을 증명하는 동시에 나에게도 필요한 시간이라 확 끌렸다.

소설만큼 읽는 재미가 있는 작가의 말에 `커피발전소'라는 곳이 언급되어 있다. 냉큼 인터넷으로 카페를 찾아보았다. 소설 속에서 수지가 편안함을 느낀 카페처럼 산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통유리창이 큰 카페이다. 봄이 가운데 이르렀을 때, 카페를 찾아 다시 소설을 느껴야겠다. 따스한 햇볕을 느끼며 꼭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느껴야겠다. 그리고 카페를 시작으로 천천히 걸어야겠다. 그날 나와 함께 하는 누군가의 산책을 들어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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