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금강산
그리운 금강산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2.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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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한국을 대표하는 명산은 누가 뭐래도 금강산일 것이다. 직접 가서 본 것은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금강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기가 쉽다. 사진이나 그림 그리고 영상을 통해 본 사람도 있고, 널리 알려진 노래의 가사를 통해 그 모습을 짐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북의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언제든지 가 볼 수 있겠지만, 직접 가서 보지 않아도, 금강산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권근(權近)에게도 금강산은 그런 존재였다.


금강산(金剛山 )

雪立亭亭千萬峰(설립정정천만봉) 눈 속에 우뚝 만 이천 산봉우리들 서 있고
海雲開出玉芙蓉(해운개출옥부용) 바다 구름 걷히자 옥빛 부용 드러나네
神光蕩漾滄溟闊(신광탕양창명활) 햇빛이 넘실대니 푸른 바다 드넓고
淑氣蜿蜒造化鐘(숙기완연조화종) 맑은 기운 이어져있으니 조화가 모였네
突兀岡巒臨鳥道(돌올강만임조도)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는 험한 길이 나있고
淸幽洞壑秘仙蹤(청유동학비선종) 맑고 그윽한 골짜기 신선의 자취 숨어있네
東遊便欲凌高頂(동유편욕능고정) 동쪽으로 유람 가 문득 높은 꼭대기에 올라
俯仰鴻濛一盪胸(부앙홍몽일탕흉) 천지를 굽어 우러러보며 가슴을 씻고 싶네


시인은 조선 초기의 인물로, 당시 기세가 등등하던 명(明)에 사신으로 보내진 바 있다. 이 시는 명의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 앞에서 조선을 알리기 위해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산인 금강산의 모습을 유려한 필체로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인은 금강산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직접 경험은 없었지만, 금강산에 대한 간접 경험이 충분히 쌓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하얀 눈 속에 일만 이천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장관을 이루고도 남는다. 바닷가에 있는지라 구름이 뒤덮이는 일이 많아서, 진면목을 보기 어렵지만, 구름이 걷히고 난 뒤 보이는 모습은 옥으로 만든 연꽃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금강산 봉우리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가 중국의 태산(泰山)을 묘사하여 조물주가 신기하고 빼어난 것(神秀)을 다 모아놓았다고 한 것을 의식하였는지, 시인은 금강산을 일러 조물주가 맑은 기운(淑氣)을 모아놓은 산이라고 응수하였다. 사람의 왕래를 허락하지 않는 험한 곳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묵었다 간 자취가 남아 있다거나, 천지를 내려다보며 가슴을 씻는다고 한 것은 금강산의 기괴함을 절묘하게 묘사한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이 그려지는 것들이 간혹 있다. 워낙 평소에 익숙하게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금강산은 그런 존재이다.

상상만으로도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그려지는 금강산 아니던가?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로 가본다면 감회가 더욱 커질 터, 그날이 머진 않으리라.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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