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친구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9.02.25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볼을 타고 내리는 그녀의 눈물이 나를 울먹이게 한다. 한 연예인이 새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외롭고 힘들었던 여고시절에 버팀목이 되었던 친구를 찾는 프로그램의 장면이다. 40년 만에 만난 그들이 서로 껴안고 진한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었다. 그녀가 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들었던 사춘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친구와 친구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친구의 존재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엔 검정 교복에 하얀 칼라만 생각해도 가슴이 설렌다. 나도 여고시절로 돌아가 친구가 생각나서 그리움에 젖었다. 매사에 성실하고 모범생이었던 단짝 친구 H는 운이 없었던지 대학진학에 실패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대학에 진학해 각자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편지로 자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 년에 한두 번씩 장거리를 오가며 우정을 이어갔다.

친구는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결혼을 일찍 서둘러 단란한 가정을 꾸렸고, 남편 사업도 번창해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자매를 두어 행복하게만 보였다. 나도 결혼한 후 부부가 함께 모여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삶엔 행복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평소 혈압이 높았던 친구는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넘어져 운동기구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식물인간이 되어 오랜 세월의 투병생활을 하였다. 남편도,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정한 말도, 다정한 눈빛도 잃어버린 친구 앞에서 혼자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눈물 흘리고 돌아서기를 여러 번, 결국 친구는 50 중반의 나이에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친구를 보낸 지 20여 년이 흘렀다. 세월이 지나면 사라질 것 같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은 그림자로 내 곁을 서성거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문학 활동을 하면서, 여러 인연으로 친구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 친구를 대신해줄 친구는 없다. 작은 일에도 심각하고 고민하던 학창시절,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어도 질리지 않던 친구. 형제가 없어 외로웠던 나에게 친구의 동생 다섯 명은 나를 친형제처럼 대해주었고 친구 부모님은 나를 딸이라 하시며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기차통학을 하여 오후 시간 늦게까지 추운 교실에 남아있는 나를 위해 친구는 하숙하는 이모님 댁으로 자주 불러 따뜻한 밥을 먹게 해주었고, 가끔 딸을 보러 오시는 친구 부모님은 용돈도 주시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셨다. 아버지가 안 계신 나에게 친구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 주셨다.

살아있기에 친구를 만나 서로 얼싸안고 해후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 친구가 살아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자식들 다 키워 성사시키고 아직은 건강하여 함께 여행하며 즐길 수 있는 나이인데…. 떠난 친구가 보고 싶고 그립다. 친구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아 갑절로 갚아주고 싶은데 갚을 길이 없어 아쉬움으로 가슴이 아리다.

친구의 존재는 인생에 행복을 줄 수도, 불행을 줄 수도, 때론 부모·형제의 역할까지 해주는 영향력을 가진다. 내 인생에 좋은 친구가 있었음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며 나도 남은 생애는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리라. 먼 산골짜기, 희끗 눈 녹은 자리에 연둣빛 기운이 감돌고 희망의 바람이 일렁인다. 우울했던 마음을 날려 보내고, 갚을 수 없는 친구가 베풀어준 우정의 빚을 갚기 위해 `친구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