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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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 승인 2019.02.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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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훗날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반갑습니다.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은 탐욕과 어리석음의 이파리들을 모두 벗어버린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다가올 봄의 새싹들을 키워내고 있네요.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무문관 제3칙 구지수지 공안(公案)과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래 우리나라에도 평생 철저한 참선수행으로 보기 드문 본보기를 보여주었던 청화 큰스님이 계셨는데요. 스님께서는 오직 일심으로 `아미타불'만을 외우는 것도 역시 나다 너다 구분함이 없이 바윗돌이나 우주 만물을 부처로 하나로 뭉치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수 있는 선법(禪法)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부처님의 영특하지 못한 제자였던 주리반특가께서는 다른 것은 못하고 오직 마당만을 쓸고 닦는 것만을 반복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르게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즉 반복이 천재를 낳게 된다는 말인데요. 복잡 다난한 생활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단순함과 지극함이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구지화상도 역시 천룡선사의 손가락을 반복하였는데도 무사했는데 동자는 어째서 손가락을 잘린 것일까요? 동자의 손가락은 구지 스님의 손가락을 흉내 낸 남의 것을 흉내 낸 것이고 구지화상의 손가락 움직임은 천룡 선사 것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손가락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이지요.

이를 오늘날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의 용어로 하면 `차이의 반복'이라 표현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제도와 주변 환경, 압력 등에 얼마나 당당하게 자신감을 갖고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는데요. 이는 우리가 얼마나 부처님께서 깨달은 다음 중생에게 설하셨던 사자후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외칠 수 있느냐는 말이지요.

불교에서 제일 경계하는 것은 아마도 흉내내기일 겁니다. 우리는 가끔 TV나 영화에서 본 것들을 그대로 흉내 내며 살아가거나 심지어는 남들과 비교하며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해 우울해 지기까지 하는데요. 앵무새처럼 줄줄 외기만 하거나 흉내만 내는 것은 참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던가요?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을 모두 던져 온몸으로 체험해 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상(無常)이라는 것은 결코 허무라는 개념이 아닌 그야말로 이 세상 만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므로 지금 여기 그 순간을 온몸으로 올인하라는 의미라는 말이지요.

사람들은 모두 완벽하게 다르고 차이가 있는데요. 이는 마치 들에 핀 꽃들과도 같습니다. 각각의 꽃들은 모양도 색깔도 내뿜는 향기도 다르듯이 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 말을 어기는 것을 싫어하는데요. 이는 무조건적으로 눈치까지 보면서 반복해왔던 타성에 빠져버린 삶 즉 진짜 내 것 아닌 삶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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