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겨울
일상생활 - 겨울
  •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 승인 2019.01.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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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은 긴 겨울의 시간은, 켜켜이 쌓인 비늘을 만들고 비늘은 단단한 목질이 되고, 더해지는 풍파를 이겨냄에 줄기의 끝은 뭉그러지고 갈라지고 형언키 어려운, 볼썽사나운 목질의 나무로 키웠다. 그 겨울의 끝 꽃눈이 먼저 순백에 가까운 꽃을 피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세계를 색으로 표현한 하늘을 배경 삼아 거친 목피와 함께 화면에 화사한 흔적을 더한 순백의 붓질, 갈가리 터지고 굳어진 외면과 대조되는 순수와 의지를 보여주는 그림. “우리는 아기가 언제나 형처럼 굳센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어.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형의 이름으로 짓기로 했어.” 자신을 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도 태어난 조카를 위해 병상에서 그려낸, 생의 마지막 봄에 남긴 그림 한 점.

사악한 영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그렸던 대상, 메디치 가문에서 가장 귀히 여겨 손님을 맞이함에 소중하게 사용했던 한 송이 꽃, 한 화가의 청혼을 허락하는 첫 키스의 향을 머금은 꽃이 그려진 그림 한 점. 초본류이지만 모진 한파를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력에 자신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그렸을법한, 뿌리를 드러낸 채 두터운 방어막도 없이 영하 30℃까지 이겨내는 풀 한 포기를 화폭에 담았다.

겨울의 추위는 세상의 모든 자람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유독 올해의 겨울은, 매년 맞이하는 겨울인데 더 한 추위로 생각까지도 얼어 그냥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이 엄습한다. 여름내 올리던 물을 내리고, 낙엽을 떨구고 남은 앙상한 나뭇가지가 생장이 끝나 고사할 것 같은 겨울이다.

초목의 자람에 외부환경이 좋지 않으면, 생장점이 뿌리로 옮겨간다. 외적인 결실보다는 내적인 에너지를 비축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은 멈추게 한다. 뿌리가 다치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뿌리가 얼거나 마르면 나무는 고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의 자람은 폭이 좁다. 그리고 초목에 겨울은 외부의 조건에 대응하는 다양한 장치를 가동시키게 한다. 떨켜가 잎자루를 분리시키고, 비늘이 더해져 층을 이루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인간은 겨울과도 같은 외부환경에 무방비로 당할 때가 잦다. 부지불식간에 치이고 들어오고, 말도 안 되는 모함을 비열함에 담아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 함에 상대를 지속적으로 광범위가게 몰아가는 것이다. 특별한 것이 없으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겨울의 기후는 삼한사온이다. 따뜻한 날이 하루 더 많다. 그래서 겨울은 이겨낼 만하다. 그런데 매일 한파이면 어찌 될까?

겨울은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견딜 만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도 봄은 오지 않을 듯하다. 작년과 올해는 지독한 겨울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이 회사를 입사하고 삼한사온이 있었을 뿐이지 하루도 겨울이 아닌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난 겨울을 즐긴다. 인생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꾸는, 끊임없는 시련의 연속인 것을 알고 살기에 감당할 수 있다.

“지금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언젠가는 내 그림들이 거기에 사용된 물감보다, 그리고 내 인생보다도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겨울이 길고 험할수록 아름답고도 향기로운 색과 향을 머금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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