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꼬리
내 꼬리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1.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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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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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속에 쑤셔 넣어 볼까? 아니야 아니야, 아빠 옷으로 가려 볼까? 이거도 안 되잖아. 이런, 정말 큰일 났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주인공 지호가 여느 때처럼 일어났는데 엉덩이에 꼬리가 생긴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일 앞에 학교는 가야 하기에 꼬리를 손으로 가리고 엉거주춤 학교에 간다. 세상 모든 것이 지호의 꼬리만 보고 있는 것 같아 조심조심 불안하게 걷고 있는데 걱정하면 할수록 꼬리가 쑥쑥 자라는 거다! 심지어 학교 앞에선 단짝 친구 민희를 만나고 말았다. 꼬리부터 가린 지호는 생각한다.

`민희가 봤을까? 애들한테 다 말해 버리면 어쩌지?'

`어쩌지?, 어떡하지?'그리고 잠시, 주춤하다가

“저 … 내 꼬리 봤어?” “저 … 내 수염 봤어?” 민희는 코 주변에 토끼처럼 수염이 있는 것이다. “수염이 있으니까 더 귀여워” “네 꼬리도 그래, 멋있어”

야릇한 안도감과 함께 교실 문을 여니 반 친구들 모두 한가지씩 변해 있었다. 어떤 친구는 입이 새의 부리가 되었고, 어떤 애는 머리에 사슴뿔이나 벼슬이 나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한쪽 팔이 가재 손이나 곰 발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친구들 모두 다르지만 하나씩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었고 이렇게 한 교실에서 터놓고 서로의 비밀과 창피함을 보이고 나니 편안해진다. 오히려 지호의 감추고 싶은 꼬리가 사랑스러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그림책이다.

그림자 속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비밀과 상처, 살아온 만큼 긁히게 되는 생의 스크레치를 우리는 직면하기보다 망각의 서랍에 넣어 놓고 늘 같은 자리에서 다시 넘어지곤 한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시련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누가 자신에게 일부러 시련을 주겠는가.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자신에게 시련을 주라고 말한다. “아무도 모르는 오직 증인이라고는 자신뿐인 시련을. 이를테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게 산다. 혼자 있는 경우라도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티끌만큼의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그 수많은 시련을 이겨냈을 때 스스로를 다시 평가하고, 자신이 고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사람은 진정한 자존심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강력한 자신감을 선사한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보상이다.”

모든 상처는 주관적이고 은밀하기에 오직 자신만이 시련의 증인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상담자라 해도 당사자만큼 아픔에 눌리지 않을 테니까. 다른 이에게는 없는 꼬리를 감추거나 보이는 것은 내 몫이라는 얘기다. 숨겨진 꼬리를 직면하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은 내가 나를 시련 앞에 세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설 때 다른 이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꼬리를 감출수록 상대방의 꼬리 또한 그림자 속에 파묻히고 마는 것처럼.

지호에게 말 못 할 걱정을 말할 수 있는 민희가 있었듯이 마음이 아플 때, 혹은 무너지고 싶은 날, 더운밥 한 끼 함께 먹을 친구가 있다면 그것으로 자신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닐까. 좌충우돌하면서 때로는 극성맞고 치통보다 아픈 욱신거림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안식은 한 번쯤 나를 알아주는 지인에게 나를 던져버리는 시련을 주어 조금 더 존귀하게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를 버릴 친구를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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