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것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12.26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어쩔 수 없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것저것 말해보자. 무거워지는 몸, 안 보이는 눈, 발바닥의 굳은살, 세어지는 머리, 늘어나는 주름살, 자라나는 수염과 손톱. 이거 너무 육체적인가. 그러면, 육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가운데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가보자.

찬바람, 추위, 흐린 날씨, 소나기, 눈보라, 쨍쨍 내리쬐는 햇볕, 진눈깨비, 우박. 이건 날씨다. 그래서 뉴스에도 꼭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날씨를 어쩌지 못한다. 태풍이 오면 맞이할 수밖에 없고, 장마는 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현대문명의 덕택으로 방에서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걸음이라도 밖에 나가려면 날씨에 신경 써서 옷을 챙겨 입어야 한다.

좀 더 크게 보자. 가는 세월, 오는 늙음. 가는 오늘, 오는 내일.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고 사라지는 것들. 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 불리는 계절들. 내가 어쩌려고 한다고 그것이 바뀌지 않는다.

좀 심각해보자. 태어나는 것, 죽는 것도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는 사람 없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났을 뿐이다. 가끔 죽고 싶어 죽는 사람도 있지만, 거개가 죽고 싶어 죽는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죽을 뿐이다.

사람끼리의 만남도 그렇다. 좋을 때는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놓고, 나쁠 때는 `내 눈이 삐었다'고 한다. 좋은 것은 숙명으로 치고, 나쁜 것은 자신의 판단으로 돌리니 요상하다. 나쁠 때는 운명으로 보면 속이라도 편하고, 좋을 때는 행운으로 보면 기쁨이 두 배로 늘어날 텐데 잘 그러지 않는다. 잘못 만나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고, 잘 만나서 생명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 아리따운 그녀와의 만남도 그렇고, 도둑놈 그 녀석과의 만남도 그렇다.

스토아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윤리적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놓고 선악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에서 그렇게 말한다. 그것을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축약시킨 `엥케이리디온'이라는 금언집은 너무도 유명해서 신부들은 외우고 다녔는데, 청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온 신부들이 기억에 의존해 펴낸 한문판본도 있을 정도다.

절름발이 노예출신의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나에게 달린 것'(在我者)과 `나에게 달리지 않은 것'(不在我者)을 철저히 구분하면서, 나에게 달리지 않은 것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내 식으로 말하면 `내가 어쩔 수 있는 것'과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 내가 남자 또는 여자라는 것, 내가 이 시대를 산다는 것, 내가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 이런 것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에픽테토스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의 범위를 매우 넓게 잡았다. 자연재해, 전쟁, 건강과 수명, 부와 가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그랬고, 하다못해 육체적 고통과 즐거움도 그랬다. 내가 아픈 것은 내가 일으킨 일이 아니라 내 몸이 일으킨 일이므로 내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술도 외물의 작용일 뿐이다.

이런 생각은 스토아가 왜 숙명론자가 되는지를 알게 해준다. 어쩔 수 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말자는 것이 그들이 생각이었다. 윤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야말로 윤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남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일까, 아닐까?

/충북대 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