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정
송강정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8.11.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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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늦가을에 땅을 뒤덮고 있는 낙엽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봄의 여림과 여름의 무성함을 뒤로하고, 땅에 떨어져 나뒹굴다 결국은 사라지는 낙엽은 인생무상과 쓸쓸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임을 생각하면 쓸쓸하기보다는 도리어 담담함을 느낄 수도 있다.

조선(朝鮮)의 시인 정철(鄭澈)은 늦가을 달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에 들어온 낙엽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송강정(松江亭)

明月在空庭(명월재공정) 달빛만 빈 뜰 안에 있고
主人何處去(주인하처거) 주인은 어디를 갔나?
落葉掩柴門(낙엽엄시문) 낙엽은 사립문을 덮어 버리고
風松夜深語(풍송야심어) 바람과 소나무에는 야심토록 속삭이네

왜 텅 빈 뜰인가? 뜰 안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서 보이지 않으므로 텅 비었다고 한 것은 아니리라. 나뭇잎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응당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므로 텅 비었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있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다. 이 집(松江亭)의 주인은 시인 자신이건만, 자신이 어디로 떠나고 없는지를 스스로 묻고 있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지만, 주인이 아닌 손님 입장에서 송강정 주인을 만나러 찾아온 상황을 연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오랜 출타 끝에 돌아온 자신의 집이 마치 남의 집처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인 혼자 거처하던 곳이므로 시인이 밖에 나갔다 와서 봤을 때 주인이 집 안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주인 없는 집에 주인 노릇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뜰을 가득 채운 달빛, 사립문을 덮은 낙엽, 밤 깊어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바람과 소나무, 이들이 주인 없는 집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쓸쓸하기 마련인 늦가을 밤, 오랜 출타에서 돌아온 시인은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집을 마주하고 외로움을 느낄 법도 하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리어 집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자연의 풍광들이야말로 자신의 집의 참된 주인임을 깨닫고, 외로움보다는 이들이 반겨주는 것에 대해 큰 희열을 느낀다. 늦가을 밤의 쓸쓸함과 텅 빈 집의 외로움을 무욕과 희열의 세계로 바꾸어 놓은 시인의 심적 경지와 그 표현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론 쓸쓸함도 외로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친근함과 아름다움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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