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만의 해후
250년 만의 해후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11.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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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누구든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이 갖는 일회성, 보편성, 유한성 때문이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통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에 따르는 의례가 상례(喪禮)이다. 관례나 혼례는 당사자가 그 주인공이 되어 의식을 치르는 반면 상례는 본인이 아닌 제 삼자인 생존자들에 의하여 치러진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또한 다른 예에 비하여 상례는 그 변화의 폭이 작았고 전통이 장기간 지속되어 사회사, 생활사, 지역사,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생로병사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은 이별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기도 한다. 무덤에 껴묻거리된 복식을 통해서이다. 청주 산남동 지역이 택지개발에 포함되면서 오래된 무덤들이 이장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광산김씨 32대인 사구재(四九齋) 김원택(金元澤, 1683~1766) 일가의 무덤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들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풍부하고 다양한 복식들이 출토되어 한 가문의 인연을 이어주고 있다.

김원택은 67세 때인 1748년(영조 24) 9월 30일에 청주목사로 임명되었고, 목사 재임 시에는 홍북루(拱北樓)를 중수하였다. 1766년(영조 42) 7월 21일에는 84세의 나이에 정2품인 한성부 판윤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11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비문(碑文)에 기록한 장지는 청주 경내 서남쪽 십리 못 되는 원흥리 마을이다. 청주 산남동에 장례를 지냈다.

김원택은 청송심씨(1683~1718년)와의 사이에서 아들 4형제를 두었다. 모두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들이다. 맏아들 상덕은 일찍 세상을 떴으나 둘째인 상복(相福)은 영조의 정치이념을 잘 뒷받침하여 영조의 신임이 매우 두터워 무려 14년간 정승을 지냈다. 셋째 상직(相直)은 여러 곳을 유람하고 뛰어난 문장으로 많은 기행문을 남긴 여행가이다. 넷째 상숙(相肅)은 직하체(稷下體)라는 고유의 서체를 완성한 명필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청주의 역사기록에는 이들에 관하여 알려주는 내용이 거의 없다. 이 중 김원택과 첫째, 셋째 아들이 청주 산남동에 터를 잡고 살았고 여기에 묻히었다. 아들이 정승 반열에 오른 김원택의 죽음으로 지내는 장례는 성대하였던 듯하다.

2003년 4월 9일 무덤 이장작업 중인 현장에 도착하였다. 3기의 무덤 봉분은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고 부부가 합장된 견고한 7기의 회곽만 남은 상태였다. 이 중 5기의 무덤에서 미라화된 시신과 함께 화려한 비단 복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389점이다. 이 중 세 무덤의 주인이 여인이다. 김원택의 처 청송심씨, 첫째 상직의 처 한산이씨(1712~1772년), 셋째 상직의 둘째 처 전주이씨(1722~1792년)로 18세기 동시대에 살았으며, 성은 다르지만, 광산김씨 문중의 사람이 된 여인들이다. 청송심씨는 재상인 심정보의 딸로서 풍요로운 유년을 보냈으나 자녀들의 성장을 지켜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 하는 애석한 삶을 살았다. 맏며느리인 한산이씨는 17세에 남편을 잃고 수절하며 종부로서의 의무를 다함이 삶의 낙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집안에서 후처로 시집와 40년을 상직과 해로하며 행복한 삶을 살았을 전주이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18년간을 홀로 살았으니 그 아픔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세 여인의 무덤에서 연꽃, 매화, 모란, 인동초, 석류, 복숭아, 포도, 다람쥐, 구름과 기하학문 등 다양한 화문단의 비단옷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8세기 선인들이 정성을 다해 마름질하고 한땀 한땀 기운 옷들이다. 청송심씨는 며느리인 한산이씨와 전주이씨를 생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시어머니이며, 두 며느리는 한 아들을 나누어 갖는 동서로 애틋한 관계였다. 그러나 죽음 이후 250년 만에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함께 복식으로 다시 태어나 해후하였으니 그 인연의 끈도 남다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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