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행
가을 기행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8.11.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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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콩 볶듯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약속된 일정을 핑계로 근무지를 벗어났다.

급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오느라 화장실 들를 겨를도 없이 달려가니 일행들이 도착하여 있었다. 함께 가는 일행은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지인들이다. 내 마음이 힘들던 시절. 시 낭송을 통하여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위로를 받으며 공직사회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모임의 회원 중 일부로 시 쓰는 동인이다. 시 낭송을 하는 사람들인 만큼 여유가 있고 유머가 있으며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었다. 어느 해는 `직지의 ○○'이라는 시 낭송 퍼포먼스를 기획해 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청주시민 대상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평균연령이 60대일 정도로 중장년층이었지만 시를 암송하여 대중 앞에서 낭송하는 것이 내게는 문화충격이었다. 나이가 들어 무엇을 외우고 기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를 통째로 외워서 감정을 살려 낭송을 하다니…. 내 안에 갇혀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목적지는 `장령산 치유의 숲'이다. 근처에 있는 연잎밥 식당에서 건강하게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이 첫 번째 기쁨이었다.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식당이라서 그런지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했다. 일행 중 한 분이 시집을 한 권씩 선물로 주셨다. 글쓰기 교실에서 시 쓰기를 가르치시는데 제자 중 71세 되신 분이 내신 시집을 사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시의 깊이가 남달라 일찍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모두 감탄을 하며 이분의 시집을 읽고 싶다고 했더니 기꺼이 돈을 내고 사다 주셨다. 고희가 넘으신 분이 첫 시집을 출간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집이 팔려 돈으로 들어오는 또 다른 기쁨까지 주고 싶으셨던 속 깊은 그분의 배려이다.

장령산은 옥천군 군서면에 위치하는데 물도 맑고 단풍도 곱게 물들었다. 햇살도 좋고 기온도 적당하여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한 날 같았다. 계곡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몸에 있는 짐을 모두 내려놓고 눈을 감고 빈손으로 팔을 벌리고 자연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얼굴에 닿는 따뜻한 햇볕의 온기와 청량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 그리고 손끝을 간질이는 바람의 촉감에 우리는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 공존하였다. 군데군데 피어 있는 꽃향유는 보랏빛 촛불을 켜 놓은 듯 우리를 반기고 쑥부쟁이 또한 바람결에 리듬을 탄다. 임진왜란 때 금산으로 출병하던 중봉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의 승병들이 지나갔다는 길옆에 소원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계곡물 한 그릇 떠놓고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단다.

단풍이 가득한 산속에서 햇볕이 따뜻한 널찍한 마루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자작 시 합평을 하는 재미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으로 남는다. 매년 오는 가을이지만 매년 다른 가을이다. 입동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가을은 깊어졌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생활이지만 잠시 멈추고 짧은 가을이 떠나기 전에 한 폭의 가을 속 풍경이 되어 보는 것도 겨울 대비 재충전으로 좋은 것 같다.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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