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생(死則生)의 길
사즉생(死則生)의 길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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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전에 다녔던 방송국 노동조합에서 연락이 왔다. 노동조합 창립 30주년 기념식에 초대위원장을 초대한다는 것이다. 참석을 약속하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회사를 떠난 선배를 잊지 않고 불러주는 후배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았고,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렀나 하는 시간의 빠름에 놀라기도 했다.

내가 그 방송사에 입사한 날은 1980년 6월 10일이었다. 5·18 광주민주항쟁 직후여서 대검을 꽂은 M16 소총을 들고 정문 옆에 장승처럼 서 있던 계엄군 사이를 지나 첫 출근하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8년여를 당시 안기부 요원과 경찰 정보형사들이 들락거리는 방송국에서 돌이켜 생각해보기도 싫은 일들을 겪으며 방송했던 그 시절의 부끄러움도 잊을 수 없다.

1987년 6·10 민중항쟁 이후 우리나라의 언론사들은 권력에 기대어 또는 굴복하며 살아온 과거를 국민 앞에 자백하고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다짐했었다.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언론해방 원년'등의 구호를 내걸고 언론사에 노동조합들이 탄생한 것도 이때였다. 노동조합 만들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회사 출입문에 `기관원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고 정보요원들의 출입을 통제한 일이었다. 이후 노동조합은 뿌리 깊은 구조적 적폐들을 청산하기 위해 끊임없는 파업투쟁을 벌여 나갔고, 올바른 방송으로 거듭나겠다는 노동조합원들의 의지는 징계와 해고, 구속이라는 탄압으로도 꺾을 수 없었다.

이런 언론개혁 운동의 결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엔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지수가 선진국 수준에 이르기도 했으나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부 10년 사이에 언론자유 지수는 군사독재 시절의 수준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그런데 독재정부 시절보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권력의 탄압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보신과 출세를 위해 언론사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언론인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또다시 언론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데 30년 전과 다른 것은 케이블방송과 인터넷 등의 확산으로 언론매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1인 방송이 등장하는 등 방송과 언론의 개념이 확 달라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한다는 공영성을 이유로 군림해왔던 지상파 방송사의 존재가치는 사라지고, 전체매체 중의 하나가 되어 다매체와 경쟁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런 환경에서 30년 전과 같이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돌려 드리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방송개혁에 나서는 후배들이 대견하면서도 애처롭다. 그들이 애처로운 이유는 이중의 칼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에는 권력의 사슬을 끊어내고 내부 개혁을 이루면 생존은 걱정할 일이 없었다. 경쟁매체가 지상파 방송사 외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의 사슬에서 벗어나기보다 방송사 경영의 목줄을 쥐고 있는 광고와 광고주인 자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어 보인다. 그만큼 다매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 있는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존이 중요하다지만 방송의 공영성이 존재의미인 그들에게 시청률 경쟁에 뛰어들라고 당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공영방송의 본분과 역할을 위해 `死則生'의 각오로 임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의 일자리 보전과 보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회복과 진실 앞에 굴하지 않는 언론의 기본적인 사명을 구현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을 다하면 거기에 곧 길이 있음을 믿고 일하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었을 때 그 신뢰가 결국은 방송을 살리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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