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8.10.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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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초등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좋았던 노빈손 시리즈. 노빈손을 그린 이우일 작가를 제주 `살롱드마고'책방에서 만났다. 제주 표선, 그중에서도 해안가를 벗어나 조금 안쪽에 위치한 살롱드마고. 지인의 추천으로 찾은 그곳은 때마침 비가 내린 오전이라 아이와 편안하게 즐기기에 무척 좋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향을 맡으며 주인장이 엄선한 책들이 가득한 공간에서의 여유로움이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참 좋은 아름다운 계절에 책상에 앉아 근무해야 하는 사실이 무척 아쉬운 요즘, 여행서로 위안을 찾아본다. 한국인들의 세계여행 비율이 높아지면서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로의 여행으로 트렌드가 바뀌어 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의 관심 때문일까, 대형 서점 여행 주제 서가에서도 포틀랜드를 종종 보았다. 취임 이후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에 출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나라. 그중에서도 포틀랜드. 굉장히 영국스러운 이름을 풍기는 그곳. 작가는 그곳을 더 힙(Hip)하게 불렀다. ?랜!
2015년 가을 어느 날, 오랜 서울살이를 잠시 멈추고 미국 오리건 주의 작은 도시 `포틀랜드'로 떠난 이우일과 가족들의 이야기(?랜, 이우일 글/비체/2017년)가 여행 중인 나의 시간을 붙잡았다. 세상 모든 여행자의 로망인 낯선 곳에 눌러앉아 살아보기. 현지인인 `척'그 동네를 즐겨보는 것. 작가는 그의 아내와 딸과, 고양이 카프카와 함께 포틀랜드를 선택했다.
`서울에서는 전혀 누리지 못하던 걸 낯선 도시에서 만끽하는 기분. 페달을 통해 허벅지와 팔로 온전하게 전해지는 도로의 느낌은 정신을 맑게 일깨운다. 눈앞에 보이는 교통신호와 도로표지판, 건물과 나무, 강과 산과 하늘이 모두 얇은 내 자전거 바퀴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자전거 타기는 내가 온전히 세상과 하나가 되는 행위다.'
이 순간만으로도 그가 포틀랜드로 떠난 이유가 충분하다. 순간의 충만한 기운. 그 기운이 나의 심장과 뇌를 움직이게 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포틀랜드를 즐기는 그의 가족 이야기가 나를 힙(hip)한 그곳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다. 작고 소심하게 타투 한두 개쯤, 자전거를 타고 맥주와 축제를 즐기며 윌래밋 강변을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다.
책 곳곳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의 면모가 물씬 느껴진다. 그의 그림 덕분에 가본 적 없는 포틀랜드가 머리에 더욱 쉽게 그려진다. 특히 `하나로 모아본 ?랜 유행 스타일'이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홍대, 상수 스타일과 비슷한 듯 도시의 문화가 패션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직업 때문인지 책을 좋아해서인지 혹은 공간을 좋아해서인지 이유가 무엇이든 낯선 동네로 여행을 가면 나 역시 서점을 찾아간다. 공간 구성, 책 진열 방식, 매장 분위기, 그리고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직원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도시의 한 부분을 다 본 것 같다. 작가가 좋아한 포틀랜드의 파월 북스의 `에스프레소 북 머신'이 나에게도 인상적이었다. 20분 만에 백 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인쇄해내는 기계와 그 기계로 자가 출판 시스템을 구축한 파월 북스만의 매력.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고, 그 책이 아름다운 책방에 진열되는 기쁨.
`뭐든 적고 그려서 남긴다는 것. 그걸 한데 묶어 책으로 만든다는 것. 참 아름답고 신기한 경험이다. 누구나 즐겁게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만든 책 한 권씩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의 말처럼 책을 만들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우는 매력적인 문화라 여겨진다. 책과 여행, 무엇을 하든 그 속에는 세상이 있고, 어디로 가든 누군가의 삶이 있고, 우린 그것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 그러니 오늘도 무엇이든 읽어보자. 그러니 오늘도 어디로든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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