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2)
이 가을에(2)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8.10.0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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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엊그제까지만 해도 푸릇푸릇하여 추석 차례 상에도 올리지 못했던 울안 대추나무에 열매가 요 며칠 사이에 거짓말처럼 불긋불긋해 졌다. 40도에 육박하던 폭염 때는 아예 맛보기는 글렀구나 싶었던 대추다. 가을을 실감케 하는 건 대추 뿐이 아니다. 벌초 때 산소 근방의 밤들이 추석엔 아람이 쩍쩍 벌어져 알밤을 한 주머니씩 주웠다.

올 추석 차례는 산소에서 포와 과일만 간단히 차려 지냈다. 큰형수님이 팔을 다치셔서 음식장만을 못한 탓이다. 어차피 먼저 간 아내의 차례 상을 차려야 하는 나는 우리 집에서 선조까지 모시겠다 하였으나 완고한 큰형님은 제사는 옮겨 다니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며 극구 반대하셨다. 아무리 아내 혼자만의 작은 차례라도 과일, 육류, 어류, 송편, 탕 등 구색을 갖춰야 하므로 있을 건 있는 셈인데 솔직히 지방만 함께 놓고 지내면 되는 것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모가 도와주었으나 이번 추석 차례상은 며느리가 주도하였다. 친정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으므로 제사상 차리는 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모가 거들어 주었는데 도와준 것이 아니라 가르쳐 주었다고 해야 맞다. 그렇게 시집와서 첫해엔 배웠고 이번 추석엔 시어머니 차례 상을 차려야 했다.

나도 몇 마디 제사상 금기 음식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복숭아는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과일로 알려졌다. 그래서 예전에 무당이 굿을 할 때나 귀신 들린 사람을 위하여 푸닥거리할 때면 복숭아나무 가지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복숭아가 제사상에 올려지면 조상의 혼이 올 수가 없으므로 복숭아를 사용하면 안 된다. 또한, 과일은 썩거나 벌레 먹은 것은 안 되고, 모양이 삐뚤어져 보기가 이상한 과일은 사용하지 않는다. 과일 윗부분을 자르는 것은 촉식(觸食)을 하려는 것인데 느낌만으로 배가 부를 수 있다고 하여 과일의 속살을 촉할 수 있게 함이다.

다음은 어류로 끝 자가 치자로 끝나는 고기다. 바닷고기 중에서 치(稚)자로 끝나는 고기와 어자나 기자로 끝나는 고기가 있는데 어자나 기자로 끝나는 고기는 고급어종으로 분류된 고기들이며, 치자로 끝나는 고기(멸치, 꽁치, 갈치 등)는 하급 어종으로 분류하여서 조상님에 대한 예로서 최상의 음식을 대접한다는 예의에서 비롯된 사상이다. 조기는 생선의 으뜸이라 제사상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명태(북어포)는 머리도 크고 알이 많아 부자가 되고 훌륭한 자식을 두라는 뜻에서 반드시 올린다.

그리고 고춧가루와 마늘인데 복숭아와 같은 맥락이다. 마늘이나 고춧가루(붉은색) 역시 귀신을 쫓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마늘은 향이 너무 독해서, 고춧가루의 경우 붉은색을 생각하면 된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잡귀를 예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붉은색은 귀신이 싫어하는 색상이다. 김치는 써도 되지만 고춧가루가 없는 백김치가 무난하다.

다음은 비늘 없는 생선으로 뱀장어 종류나 메기 등을 이르는데 예로부터 비늘이 없는 생선은 부정(不淨)한 생선으로 구분하였으므로 부정한 음식을 조상에게 바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비늘이 있는 잉어는 제사상에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잉어가 성스러운 영물로 숭앙되기 때문이다.

제사상 차림은 가문마다 홍동백서니 조율이시, 어동육서, 배복방향 등 순서도 있고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있으나 여기에 꼭 얽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며느리는 배운 대로 시킨 대로 잘 차려 칭찬을 들었다. 시집와서 첫 번째로 손수 차린 차례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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