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터 그리고 48시간
2미터 그리고 48시간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10.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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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크게 아파 본 기억이 없다. 아파서 학교를 빠졌다거나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다. 정말 건강 면에서는 무탈하게 사십 년을 보낸 것이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아픈 기억은 처음으로 맞았던 침이었다. 5살 혹은 6살 무렵에 나는 알레르기로 고생하였다. 차가운 음식을 먹거나 차가운 바닥에 앉으면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사과 한 쪽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엄마는 병원이다 어디다 데리고 다녔다지만 기억은 없다.

그 알레르기를 고친 것은 침이었다. 한의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빠와 같이 간 그곳에서 양손 가득 침을 맞았다. 쪼그만 애가 울지도 않는다며 어른들이 날 두고 한 말을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머리, 얼굴, 등등에 기다란 침을 맞고 있던 사람들 모습에 놀라 울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침 맞던 곳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곳을 몇 번 다니고 나는 두드러기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내가 아파서 고생한 유일한 기억이다.

아픈 사람이 정말 많다. 주위에도 다리가 늘 아픈 엄마, 허리가 아픈 아버지, 투병 중인 이모를 비롯해 병원에 가면 내 몸이 건강함을 고맙게 느낀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위로할 방법을 너무 모른다. 아무렇지 않게 그 병은 쉽게 나을 거야 하거나 조금만 참으라고 이야기한다.

`2미터 그리고 48시간'(유은실 지음·낮은산· 2018년)을 읽고 그 무지함이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주인공 정음은 이제 18살 여자 사람이다. 부모는 이혼했고 남동생과 엄마와 산다. 그리고 그레이브스씨와 동고동락한 지는 4년차이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의 가장 흔한 원인 질환이라고 하는 그레이브스병은 정음이의 눈이 튀어나오게 하고 몸은 피곤하게 만든다. 4년 동안의 병원 치료로 남은 것은 붕어 눈과 평균보다 많은 체지방이었다. 병원은 정음이에게 방사선 요오드 치료를 받으라고 권한다. 그 치료를 받으면 소량의 방사능에 피폭된 것으로 48시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2미터 정도 떨어질 것을 병원은 권고한다. 잘 참는 아이, 남한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정음이가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2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48시간을 견딜 곳을 찾아간다.

“너보다 더 아픈 애도 잘만 웃고 다닌다며 웃고 좀 다니라”는 친구의 말에 정음이는 아픈 사람은 안 아픈 척 연기도 해야 함을 깨닫는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이렇게 확인하니 씁쓸하다. 이 책의 저자는 많은 사람이 병을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조언한다고 한다. 저자 또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책에서 `병자, 환자, 피해자, 희생자는 가장 멀리 여행한 사람이자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된다.'라는 구절을 읽고 이 이야기를 쓸 용기가 났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의 여행기를 읽으니 이제껏 했던 아픈 사람에게 전한 나의 말들이 그저 입바른 소리였음이 느껴졌다.

그들의 아픔을 나는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린 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주문을 거는 걸까? 왜 아픈 사람들은 병에게 맞서 싸우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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