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과 재량사업비
지방의원과 재량사업비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9.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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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청주시의회의 몰염치가 도를 넘었다.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로 둔갑한 의원재량사업비를 계속 쓰겠다는 입장이다. 재량사업비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함께 논의를 해보자는 초선의원 5명을 주장을 묵살한 채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감사원과 행정자치부는 의원재량사업비 편성의 불법성과 집행과정에서 불거지는 부정과 폐해를 지적하며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폐지를 권고했었다. 의원재량사업비를 편성할 경우 중앙에서 지방으로 교부되는 예산을 줄이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이자 충청북도와 청주시는 재량사업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해놓고는 슬그머니 명목만 바꿔 집행해 왔다. 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한통속이 되어 짬짜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원들은 의원재량사업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지역구에 꼭 필요한 소규모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일이라면 일선 행정조직에서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다. 동이나 면단위의 주민자치센터나 시·군·구청은 그런 일을 하라는 조직이다. 행정조직을 통해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는 일을 의원의 이름으로 하려는 것은 자기 낯 세우기를 통해 다음 선거에 표를 얻어 보자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불투명한 집행과정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관심이 있어서라는 의심도 받을 만하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전북지방검찰청은 `전북 지방의회 재량사업비 관련 비리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4명이 구속되고, 17명이 불구속으로 기소된 사건이다. 전북지방검찰청은 이 발표에서 `국가예산이 지방의회 의원들의 선심성 또는 대가성 사업에 사용되고, 그 과정에서 지방의원, 브로커, 사업 수주업체 사이에 부정하게 금품이 오가는 구조적 비리가 드러나 엄정처리하였다'고 밝혔다. 또 `수사과정에서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재량사업비 예산폐지 입장을 밝혔는바, 전주지검은 이번 수사결과가 불법적 관행 개선의 계기가 되고, 향후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투명하게 편성하고 집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다.

전북지방검찰청이 밝힌 21명의 혐의자 범죄사실을 보면 뇌물공여와 뇌물수수,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범죄 중에서도 지저분하고 파렴치한 죄목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실제로 재량사업비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자기 지역구도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는 등의 불법적 사례들도 있었으나 어물쩍 넘어갔을 뿐이다. 만약 충북지방검찰청이 충북 지방의원들의 재량사업비 사용에 대한 수사를 벌인다면 전북지역보다 더 많은 의원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또 8월 말 전남일보에는 광주지역의 전직 구청장이 지방의원에게 주어진 재량사업비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단면을 고백한 기사가 실렸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정말 긴급한 곳에 쓰여야 하는데 의원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소진되고, 집행은 대부분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의원이기는 하지만 주민의 혈세가 지방의원의 선거나 이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재량사업비를 편성해준 단체장이 고백한 것이다.

이제 충북도의원, 청주시의원을 비롯한 충북의 지방의원들과 도지사를 비롯한 단체장들은 재량사업비를 편성하지도, 요구하지도 않겠다는 선언에 나서야 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의원활동을 위해, 지역구민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더라도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일을 법을 어기면서까지 꼼수로 편성하고 집행하는 것은 범죄다.

적폐청산과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이 정권의 여당 소속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적폐청산은커녕 적폐와 불법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추위와 싸우며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분노한다. 자괴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들을 지지했던 시민들의 분노가 더 자라기 전에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고 지역과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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