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강
가을의 강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8.09.0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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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 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세월은 종종 강에 비유되곤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이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세월의 모습은 왠지 강물과 비슷할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처럼 세월을 닮은 강이지만, 세월 중에서도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을이 시간의 흐름을 가장 실감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의 강에는 세월이 흘러가는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는데, 명(明)의 시인 백균(白勻)은 이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가을 저녁 강(秋江晩渡)

落日歸棹緩(낙일귀도완) 지는 해에 돌아가는 배 느리고
瘡江秋思加(창강추사가) 푸른 강에는 가을 시름 더해지네
雙鱗上荷葉(쌍린상하엽) 한 쌍의 물고기는 연잎 위로 뛰고
一雁下蘋花(일안하빈화) 외기러기는 마름꽃에 내려앉는구나

강은 가을 강이 최고이고, 그중에서도 저녁 모습이 가장 환상적인 것일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시인은 가을 하고도 저녁 강의 황홀한 풍광을 직접 목도하는 행운에 직면하였다. 해질 무렵인지라 서쪽 하늘은 온통 붉은빛이고, 그 모습은 그대로 강물에 비치고 있다. 아래도 석양 노을, 위도 석양 노을인 환상적인 공간이 바로 시인이 접한 강이다.

그런데 이 강은 단순한 자연 풍광만은 아니다. 사람의 생존 공간이기도 하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리는 어부(漁夫)의 일터인 것이다. 그 어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느릿느릿 노를 저어 집을 향하고 있었다. 어부의 실제 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시인의 눈에는 하나의 풍광으로 들어온다. 흐르는 세월에 흐르는 강, 그리고 흐르는 배까지 느리지만 끝없이 흘러가는 이미지는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멀리서 강을 바라보다가 강에 가까이 온 시인은 강물을 주시한다. 그리고는 이내 강물이 부쩍 파랗게 된 것을 알아채고는, 그 이유가 가을 시름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여기서 가을 시름이란 가을이 되면 절실하게 느껴지는 고향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말한다.

강물 위에는 연잎이 떠 있었는데 그 위로 물고기 한 쌍이 뛰어오른다. 마름꽃도 물 위에 떠 있는데, 그 위로 외기러기가 내려와 앉아 있다. 가을 강의 풍광이지만 단란함과 외로움의 이미지가 교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늙어 감을 한탄만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관조하는 것은 삶의 큰 지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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