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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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8.09.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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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우리 인제 그만 헤어지자. 너와 너무 오래 살았어. 너를 벗어나고 싶어. 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그러나 나의 마음과 다르게 나의 행동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처박아 둔다. 버리지 못하는 나의 습성에 관한 심경이다.

옷장에 옷은 수북하나 입을만한 옷은 몇 벌 없고, 책장에도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어 새로운 책은 자리를 못 잡고 책상 위에 수북하다. 냉장고도 가득 찼는데 먹을 건 별로 없고, 집 안 곳곳에 나의 미련들이 숨어 있다. 여기저기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면 갑갑해져 버려야지 하면서도 습관으로 굳어져 버리기가 쉽지 않다. 간혹 변덕이 나서 이것저것 정리해서 버리고 나면 나중에 찾게 되어 버리는 것에 망설여진다. 물건에 의미와 추억이 스며 있는 것은 더욱 그렇다.

물건이 너무 많다 보니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순간에 바로 찾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찾는 시간이 소요되고, 못 찾으면 다시 사게 되는 낭비도 생긴다. 물건이 널려 있으니 제자리를 잡는 것도 수월치 않다. 두 손에 가득 들고 있으면 더 좋은 것이 있어도 갖지 못하니 복이 달아난다고 들었다. 그래서 옷을 하나 새로 사면 하나를 버리고, 물건도 새로 들여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단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오랜 시간을 거쳐 굳어진 습성은 새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공부의 신'의 저자 강성태는 습관을 바꾸는 데 66일이 걸린다고 하는 데 50년 걸린 습관이 66일 만에도 바뀔까?

물건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자연으로 둥글어 가는 세상은 내 마음과는 별개로 그저 묵묵히 낮과 밤을 번갈아 가며 제 길을 갈 뿐이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가 만나는 작은 세상도 시계의 초침처럼 빠르게 제 갈 길만 가고 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수시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적응하려니 나이가 들수록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주변 상황과 맞추어 살고자 한다. 그러나 기대치가 있다 보니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그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자식이다. 자식 일로 열을 내고 흥분을 하며 내 일이 아니니 상관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하루도 못 가서 또다시 개입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통하여 자유를 강조하셨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스님은 지인이 준 화초가 걱정되어 암자를 비울 수 없음을 느끼고 화초를 다른 사람에게 주자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옷 한 벌 걸려 있는 텅 빈방에 햇빛만 가득 차도 충만을 느끼셨으니, 탄핵당한 조계종 총무원장인 설정스님의 은처자나 재산은닉 등의 사건을 들으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물건이나 마음 비우기는 결국은 현재에 집중된다. 일단 모두 꺼내서 상태를 확인해 본 후 현재 꼭 필요한 것만 분류하여 두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는 게 정리이다. 그렇게 정리를 한 다음 제자리에 수납해야 정돈이 된다고 한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마음을 꺼내어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봐야겠다. 그리고 불필요한 물건이나 감정을 과감히 버리리라. 열매도 솎아 줘야 상품 가치가 있는 열매를 얻듯, 현재 꼭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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