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코르셋
탈 코르셋
  • 이수경 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이미지소통전략가
  • 승인 2018.08.2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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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수경 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이미지소통전략가

 

밤새 열어둔 창문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에 걷어 차버린 이불 사이 드러난 살갗을 뚫고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주섬주섬 늘어진 코르셋을 졸라맨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요즘 실제 나의 모습이다.

숨이 턱 막힐 때도 있고 짜증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음 내 가늘었던 허리는 금방이라도 백과사전 두께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아직은 펑퍼짐한 중년이 되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내 안간힘이지만, 그럼에도 서서히 두둑해져 가는 뱃살이 가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흔들림 없는 삶의 방향을 제대로 찾았기 때문이리라.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따르던 무리가 하나둘씩 줄어 자취를 감추고 바라보며 넋을 잃던 사람들의 눈길마저 느껴지지 않음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중년에 접어든 여성들은 삶에 재미도 의욕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왜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익어가는 것 같은데, 여자는 나이가 들면서 늙어 가는지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가 우습지 않게 느껴지는 때가 있기에 어쩌면 우리는 자신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아서 탈 코르셋을 주장하는지도 모르겠다.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여성운동이 확산하면서 요즘 간간이 탈 코르셋이라는 용어가 SNS를 통해 눈에 띄고 있다. 탈 코르셋 이란 사회에서 부여한 `여성성'을 거부한다는 취지의 운동이다. 몸을 조이는 속옷인 코르셋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 외모지상주의와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억압들을 벗어나고자 함에 있는데, 일부 여성들은 SNS에 민낯과 남자처럼 짧은 머리카락, 화장품을 폐기한 사진 등을 게시하며 탈 코르셋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패션의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코르셋(프랑스어 corset)은 미적 목적이나 의학적 목적을 위해 몸통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입는 옷이었다.

풍만한 가슴과 대칭되는 엉덩이, 모래시계 같은 몸매를 위해 코르셋이 입혀졌는데 보정 속옷이라는 의미로 코르셋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다.

많은 사람이 미디어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부러워하며 모방하고 남들은 저렇게 멋지고 예쁜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기비하에 사로잡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자기애가 없으니 만족도 없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내가 자신 없으니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또한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말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고 늘어가는 주름 한 줄, 겹치는 뱃살, 옆구리 살, 팔뚝 살을 나잇살이라고 위로하면서 태연한 척 해보지만 어찌 보면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늘어난 주름과 살들에 꽂힌 남들의 시선이 아닌 그럴 거라고 믿어버린, 초라해진 나 자신인 것이다.

이수경 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이미지소통전략가
이수경 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이미지소통전략가

 


결국 남의 시선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평가하는 나의 시선이 어땠는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에 아무도 나 자신을 멋대로 평가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자신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탈 코르셋을 외치기 이전에 내가 누구인지를 찾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찾아보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서면 이렇게 말해보자.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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