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인의 천문지식-청주 아득이 별자리 돌판
청동기인의 천문지식-청주 아득이 별자리 돌판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07.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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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금강 언저리가 넓게 형성된 충적대지상에 청주 아득이 고인돌이 축조되어 있다. 1977년 12월 말~1978년 1월 초 사이에 9일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대청댐 수몰지역 문화재조사의 일환이었다. 고인돌 조사과정에서 돌덧널무덤[石槨墓] 3기, 저장고 1기, 선돌 1기 등이 새로이 확인되어 조사하였다. 청동기인들의 무덤터이다.

초가 민가 뒤편에 있는 고인돌은 도굴된 상태였고 덮개돌은 2조각으로 깨져 있었다. 덮개돌 윗면에는 246개의 크고 작은 알구멍[性穴]이 분포하고 있다. 약 10톤의 거대한 덮개돌을 어렵게 옮기고 매장 주체부인 무덤방 조사를 조심스럽게 진행하였다. 모래땅이라 힘들지는 않으나 매서운 강바람은 견디기 어렵다. 서서히 판자돌로 만든 무덤방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검을 묻은 무덤방은 길이 214cm, 너비 106cm로 주검을 바로펴묻기[伸展葬]에 충분하다. 무덤방의 막음돌을 세우기 전에 불을 피웠던 흔적이 확인되어 장례의식이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무덤방 안팎에서 깨진 유물과 많은 돌이 드러났다. 한겨울 추위를 견디며 차가운 물로 발굴 중에 나온 모든 것들을 깨끗이 씻으며 관찰해 나갔다. 쇠뿔모양 토기 손잡이, 가락바퀴, 돌끌, 홈날석기 등의 유물들이 파손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의식과 관련된 행위의 결과로 보인다.

고인돌 무덤방 밖에서 돌판이 드러났다. 사암을 손질하여 만든 가로 23.5cm, 세로 32.4cm, 두께 3.5cm의 긴 네모꼴 모양이다. 이 돌판의 편편한 면에 지름 2~7mm 크기의 홈이 65개 새겨져 있다. 홈은 깊이와 크기가 서로 다른데, 큰 홈이 적고 작은 홈이 많다. 돌판에 새겨진 홈들의 분포를 분석한 결과 북두칠성, 영자리, 작은곰자리, 케페우스, 카시오페이아 등 5개의 별자리를 표현한 것으로 밝혀졌다. 홈은 별을 나타낸 것이고, 홈의 크기는 별의 밝기를 표현한 것이다. 특히 돌판 왼쪽 아래에는 별 7개를 배열하여 북두칠성을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별의 배열모습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북두칠성의 모습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다.

이처럼 반전된 별 그림은 안악 1호분, 덕흥리 고분, 약수리 고분 등 고구려 벽화고분들의 별자리 그림에서도 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 서곡리 벽화묘에서도 천정에 반전되어 그려진 북두칠성이 있다. 이렇게 별자리를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투영하는 방법은 고구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주로 사용되어 온 투영법이다. 반전된 별자리 그림은 하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본 개념, 즉 성경(星鏡)의 원리를 청동기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아득이 돌판에 새겨진 별자리를 청동기시대 북극 근처의 실제 별 분포와 교차상관함수를 이용해 검증한 결과 북극 주변의 별들을 나타낸 것으로 밝혀졌다. 고인돌 축조 당시 북극 근처의 별을 돌판에 새겨 주검과 함께 부장하였던 것이다.

아득이 돌판에 새겨진 5개의 별자리와 반전된 표현방법, 별의 밝기에 따라 홈의 크기를 달리 나타낸 관찰력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뛰어난 천문지식과 천문관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죽은 자의 무덤에 왜 별자리를 새겨 부장하였을까? 아마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청동기인들은 죽은자의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기를 바라며 별처럼 빛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별을 새겨 부장하지는 않았을까. 무덤에 별을 그려 죽은 자의 영혼을 기리는 풍습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문지식은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과 정치, 종교, 농경 등 현실적 응용이라는 측면에서 당시 사회에서 중요한 과학의 하나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주 아득이 별자리 돌판은 천문학사적으로 청동기인의 천문지식에 대한 중요한 학술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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