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웅들
작은 영웅들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8.07.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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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엊그저께 저녁에 고향 선배님댁을 갔었다. 선배는 공직 생활을 하시다 정년퇴직을 하였다. 그런데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럼에도, 힘든 일을 마다치 않고 열심이다. 한우 10마리를 관리하고 논과 밭농사를 짓고 있다.

멀쩡한 몸으로도 힘겨울 텐데 손발이 불편한 신체지만 어려서부터 몸에 밴 부지런함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소는 기르기에 어려움이 없고 논농사 역시 그럭저럭 수월하나 밭농사가 고민이란다. 물론 축사를 돌보거나 논 관리를 하는 것보다 밭일이 힘들기는 하나 몸으로 때우면 되는데 고라니만은 어쩔 수가 없단다. 키 높이로 높게 울타리를 쳐놓아도 뛰어넘어서는 농작물을 뜯어먹는다는 것이다.

또 어렵사리 이렇게 저렇게 가꿔놓고 나면 결실을 볼 즈음엔 각종 조류와 멧돼지가 극성을 부려 농사를 망치고 만단다.

이런저런 농사이야기를 하던 중 시를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요즘 누가 머리 아픈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던가? 늦은 나이에 선 듯 결심을 내려준 선배가 고마워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어쭙잖은 실력을 발휘해 문학에 대하여 수다를 떨었다. 가방끈이 긴 선배는 일찍이 시에도 심취한 적이 있어 이해가 빨랐다.

밤늦게야 돌아오게 되었다. 오는 길에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시골길에 정체될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웬일인가 싶어 내려가 보았다. 교통사고였다. 고라니를 피하려다 마주 오던 차와 충돌한 사고다. 그 순간 이런 글이 떠올랐다.



- 작은 영웅들 -

차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도로에

자동차 한 대가 누워 있다

지나던 차량이 멈춰 서고 운전자들이 하나 둘 사고 현장으로 모인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차에서 내려

각자 도울 일을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어떤 이는 소화기로 불을 끄고

어떤 이들은 운전자를 구조하고자 차 위로 올라가고

어떤 이는 휴대전화기로 구급차를 부르고

어떤 이는 파편조각들을 치운다.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사고 현장으로 모여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고 하나같이 일상 속으로 사라진다.

어느 누구도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을 던져가면서 심지어 부상을 당해가면서

어려움에 처한 남을 돕는 사람들

이들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대로 적었으면서 누구나 단숨에 읽고 감동할 수 있는 리얼리즘의 현장성 넘치는 좋은 작품이다. 시가 별것인가? 한쪽에선 야생동물을 보호하자는 강력한 외침이 있는 가하면 농가에서는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가운데 유해 야생동물 퇴치로 고민하는 농민들과의 아이러니한 관계에 있는 작금이다.

어제 문학아카데미에서 노천명의 시를 강의했다. 노천명 하면 떠오르는 사슴이다. 자연스럽게 사슴을 이야기하다가 고라니가 튀어나왔다. 아는 선배가 고라니 때문에 농사를 망친다고 하자 농사를 짓는다는 수강생이 껄껄 웃으며 그야말로 획기적인 고라니 퇴치법을 내 놓았다. 콩 농사를 짓는데 새들이 하도 콩을 쪼아 먹어 독수리로 된 연을 띄워 놓았단다. 그런데 의외로 고라니까지 접근을 않는다는 것이다.

사슴과 고라니는 사촌 격으로 겁 많고 의심 많은 동물이다. 독수리 모양의 연을 보고 고라니가 놀라 콩밭을 어리대지 않는 것이다. 옳지. 이것이구나. 언능 선배에게 일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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