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라디오
어머니와 라디오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7.0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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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장맛비가 쏟아진다. 창문을 열었다. 비구름에 덮인 음산한 대기는 정적에 싸여있고, 제법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빗줄기를 실어 나르는 바람소리만이 빈 하늘에 가득하다. 오랜만에 라디오를 틀었다. 평소에는 라디오 들을 생각을 잘 못하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온다든지 마음이 울적할 때면 웬일인지 라디오 생각이 난다. 그리고 라디오를 들을 때 마다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은 어린 마음에 새겨졌던 아픈 사연 때문일 것이다.

내 기억속의 첫 라디오는 일제 `히다치' 라디오다. 직사각형의 네모난 몸통을 네 다리가 받치고 있는 위용이 당당한 모습의 진공관 라디오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집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수놓아 만든 흰 보자기를 덮어쓰고 안방 아랫목 작은 나무밥상 위에 올라앉아 있던 라디오는 꼬맹이들은 절대 만져서는 안 되는 고귀한 몸이었다. 저녁을 먹고 아버지가 콘센트에 전원을 꼽고 스위치를 돌려서 라디오를 켜면 상자 속 진공관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소리가 나오던 그 라디오가 얼마나 신기했던지,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라디오가 사라졌다. 아버지께 라디오의 행방을 물었더니 나를 꼭 끌어안고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위장병을 앓고 계셨다. 오랫동안 속이 아파 고생하면서도 민간요법과 동네 병원을 다니며 약을 타먹는 정도로 치료를 받아왔었는데 상태가 계속 악화되었다. 그래서 인근 도시의 병원에 가봤더니 십이지장궤양이라며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치료하라는 진단을 받으셨단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원비에 보태기 위해 라디오를 팔았던 것이다. 라디오를 팔아도 병원비에 보탬이 될 만큼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라디오가 사라지고,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아버지가 퇴근하시며 큰 소리를 우리를 불러 모았다. 아버지 두 팔에는 커다란 상자가 안겨 있었는데, 당시 금성사에서 만든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그때부터 우리의 저녁은 다시 행복해졌다. 당시에는 오동나무 이불장 대신 철제 캐비닛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도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오신 오동나무 이불장을 내놓고 철제 캐비닛으로 바꾼 때였는데, 아버지께서 라디오를 캐비닛 위에 올려놓았다. 얇은 캐비닛 철판을 울리며 온 집안에 찌렁찌렁 퍼져나가던 그 라디오소리를 잊을 수 없다.

저녁식사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라디오를 듣는 것은 하루의 행복이었다. 그땐 라디오 드라마를 많이 들었다.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에 푹 빠져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드라마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권투 선수 김기수 씨의 일대기를 다룬 `내 주먹을 사라'는 어린 나이에 권투에 대한 동경과 역경을 이겨 나가는 삶의 가치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준 드라마였다. 그리고 내용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길'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인기 드라마가 방송되거나 국가대항 축구중계가 있는 시간에는 동네 꼬마들도 모두 집으로 들어가 온 동네가 조용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에 은밀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 가족이 안방 라디오 앞에 둘러앉아 웃고 울며 라디오 삼매경에 빠져있는 시간을 이용해 그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며 여유 있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우리 집에도 손님이 왔다. 온 식구가 드라마에 집중하느라 아무도 낌새를 채지 못했는데 학교도 안 들어간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옆방에 누가 왔다고 말해서 아버지가 쫓아나가고 손님들이 화급히 튀어 달아나고 하는 소동을 겪기도 했었다.

나에게 라디오는 마음속에 내재됐던 추억들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한편으론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감성적 도구이다. 어머니의 위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라디오를 팔아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라디오 소리가 주는 생명력과 상상력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눈을 감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를 부르고 계신 젊은 날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모습은 실제의 기억인지 상상속의 기억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나를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만은 라디오 소리처럼 아직도 쟁쟁하게 내 귓가에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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