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달빛 식당
한밤중 달빛 식당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06.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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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부끄럽고 창피한 기억들이 있다. 대학생 때 정류장에서 막 떠나는 버스를 잡기 위해 뛰다가 넘어졌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었고 길 건너편에는 하필 중학교 동창이 보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내 몸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발딱 일어섰다. 이런 순간에 버스 기사 아저씨는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셨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버스를 탔다. 무릎에선 피가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휴지를 꺼내 고개를 푹 숙이고 피를 닦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에야 웃고 떠드는 에피소드 정도지만 말이다.

이것 말고도 나쁜 기억이라 할 만한 기억들은 무궁무진하다. 교과서를 안가지고 와서 선생님한테 혼났던 일, 치마단이 속바지에 쑥 들어갔던 일, 신발 깔창이 떨어져 딱딱 걸으며 의도치 않게 발바닥이 훤하게 보이던 일 등등 너무 많다.

그 순간순간은 창피하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었다. 하루가 지나고 몇 해가 지나니 추억이 되어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정말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이러저러 이야깃거리가 있는 나쁜 기억도 추억이 되어 내 삶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위안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도서`한밤중 달빛 식당'(이분희 저, 비룡소, 2018)은 그런 기억에 관한 동화책이다. 주인공 연우가 밤길에 우연히 만난 식당이 한밤중 달빛 식당이다. 배가 고픈 연우에게 식당 주인 여우는 연우에게 나쁜 기억을 음식값으로 달라고 한다. 연우는 맛있게 먹고 나쁜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연우에게 나쁜 기억거리는 매일 생긴다. 친구에게 놀림 받는 일, 아빠에게 혼나는 일. 연우는 그 기억을 잊기 위해 달빛 식당을 찾는다. 기억을 잃은 연우는 자신을 하염없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아빠를 바라보며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나쁜 기억이 없다면 즐겁고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라고 중얼거린다.

연우는 식당을 다시 찾아간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마지막 주문을 한다. “나쁜 기억 범벅 셰이크”로 연우는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 나쁜 기억 속에 함께 없어진 엄마의 마지막 말도 되돌아왔다. 정말 잊어버리면 안되는 엄마의 마지막 말 “사랑해, 기억해!”였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삶이 되고 자라난다. 연우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좁고 구불구불한 것처럼 구불구불한 기억과 탄탄대로 같은 기억이 쌓여 나를 만든다. 나쁜 기억은 꼭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소중한 기억들이 나쁜 기억 속에 틈틈이 자리 잡고 있다.

나의 창피하고 부끄러운 기억들이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연우에게도 이러저러한 기억들이 하나의 추억이 되길 바란다. 다 큰 어른이 늘 하는 지겨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시간은 흐르고 지나가다 보면 그렇고 그런 사소한 일이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도 이 시간이 흘러 추억할 그날이 올 것이라고 더불어 이야기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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