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진 마음, 평생 먹은 마음
처음 가진 마음, 평생 먹은 마음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4.17 2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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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 보던 거울을 본다. 요즘 들어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하나 둘 새치로 시작했던 흰머리가 세력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해 된서리가 늘 덮여 있고, 뜨거운 뙤약볕에서나 탔던 얼굴이 이젠 볕에 반응이 없을 정도로 검은빛으로 변해가는 보기도 싫은 외모를 본다. 이제 나이 50을 넘어서며 변화된 일상이다.

육체적 증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누워서 자본적이 언제였나 싶다. 일을 하면서 얻은 병은 나을 기미가 없고, 정신적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는 생활의 연속에서, 1주일이 넘는 시간, 의자에서 잠을 청했다. 그마저 반복되는 고통에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증에 따른 신음이 연신 입으로, 몸 안에서 몸서리친다.

2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작년 누나에 이어 가장 많이 닮은 엄마가 세상을 달리하셨다. 이제 남은 것은 육남매 중 삼형제와 가족들, 넷째였던 내가 가장으로서 살림을 맡아 움직여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을 돌리며, 공사장에서의 막일까지 다 해냈건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난 이겨나가리라 했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잃어야 할 것들이 하나 둘 더해가고, 참아내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늘어남에,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날 느낀다. 그나마 가족이라는 큰 버팀목과 평생 내가 하는 일에 있어 자부심 하나로 버텼건만.

조용히 처음 입사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다시 선생의 길을 포기하고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을 당시를 생각하고, 처음 사범대에 입학해서 학원 강사를 시작했을 당시를 생각한다. 그리고 집을 나와 독립하면서 얻은 단칸방에서의 다짐을 생각한다. 내가 왜 이 길을 택하고 이제껏 걸어왔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각인하고 담금질하기 위해서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고, 침체되었다가 격한 감정의 골을 조절하고자 노력한다. 그러함에도 잘 안 될 때는 내가 있었던 현장을 찾는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기초를 만들었던 삶의 현장이다. 눈비가 억수로 내리던 상황에서의 비탈진 수동, 수금한 돈을 다 빼앗기고 도망가다 머리를 곤두박았던 미나리꽝이 있었던 곳, 병천이라는 동네에 처음 아파트를 짓기 위해 토목공사를 하던 곳, 점심을 먹고 쉴 곳이 없어 포대를 깔고 잠시 누워 있다 보면 행인의 발소리에 일어나던 도로변, 옥산이며 문백이며 농로를 내는 공사를 하러 여기저기 누비던 시절의 현장을 말이다.

난 머리가 나빠 늘 몸이 고달팠던 사람이었다. 단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직업을 가졌기에 행복하고, 앞으로 그려나갈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러함에 늘 같이 하는 분들께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뼛속 깊이에서의 고통을 참아가며 거울을 본다. 점점 초췌해져만 가는 얼굴을 보며, 내가 어떻게, 얼마나 더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건네면서 말이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에게 말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큰 보상이 있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또 멋진 삶을 그리고 펼쳐나갈 기회가 생길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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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2018-04-19 14:01:30
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요즘 소반을 접하면서 괴목괴목 그러길래 괴목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두가지를 일컫고 있어서 엄청 혼란스러웠네요. 예전에는 일상에서 쓰였던 밥상이라서 그저 중요한 정보가 아니였다 치더라도 이제는 올바르게 기록하고 후대에 전달하는게 매우 중요한 정보의 사회가 되었죠. 좋은 기사, 속이 후련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