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월송정에서 비단결 고운 금강을 내려다본다
청주 월송정에서 비단결 고운 금강을 내려다본다
  • 김명철<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8.04.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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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 김명철

인간은 일찍이 휴식공간으로 `누정(누각과 정자)'과 같은 건물을 짓고 활용했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사기'에 나온다. 신선들이 `누'에서 살기를 좋아하였으므로 황제는 `오성십이루'를 짓고 신인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누정'은 488년에 신라 소지왕이 천천정에 행차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처음 보인다. 아마도 천천정은 연못가에 자리 잡은 정자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누정'은 궁궐 내에서 임금의 휴식공간이며, 임금과 신하, 또는 후대에 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월송정을 인터넷에 찾아보면 경북 울진군 평해읍의 정자가 나온다. 동해안에 위치하여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월송정은 신라시대의 화랑들이 이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월송정의 풍광에 하나같이 감탄하며 시와 노래를 즐긴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고장 청주에도 월송정이 있다. 경북의 월송정이 동해 바다를 끼고 세워져 있다면 청주 월송정은 비단결 고운 금강과 적당한 넓이의 들을 사이에 두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다. 유명한 시인 묵객들보다는 농사일에 땀 흘린 농부들이 땀을 닦고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음직하고, 혹은 글 읽는 학동들의 목소리가 지금이라도 들리는 듯 다정다감한 느낌의 소박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정자이다.

청주 월송정은 옛 청주와 대전을 오가던 말미개 나루터가 있던 지역으로 대전지역 배터말로 오가던 옛길 가까이에 있다. KTX가 요란하게 지나가는 현도면 중척리 강정마을 뒷동산에 소나무와 밤나무가 정겹게 서 있는 낙엽 쌓인 돌계단에 올라서면 오솔길 끝에 단정한 모습으로 답사 객을 반긴다.

청주 월송정은 1612년 광해군 때 월송처사로 불리던 오유립이라는 분이 세웠는데, 내부는 칸을 나누지 않은 통 칸으로 마루를 깔아 놓은 정자이다.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목조 기와로 되어 있다. 월송처사는 금강변 경치가 뛰어난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인근의 젊은이들을 모아 교육했는데,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나라에 충성하도록 교육하며, 인간의 규범을 깨우치던 분이었다. 자신의 학문 연구에도 매진하여 당시에 사람들이 월송처사라고 존경하며 온 마을의 스승으로 생각했다고 전한다.

월송정 안에는 1779년(정조 3년)에 송환기가 쓴 `한수추월 대동정송'이라는 현판이 있고, 정자 앞에는 1985년에 성낙서가 쓴 `월송정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그 외에도 이 월송정에는 임재 송근수가 지은 `월송정중수기'를 비롯한 4개의 기문과 제영 18수가 걸려 있다.

청주 월송정은 1802년에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으며, 1965년에 다시 짓고, 1980년에 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청주 월송정은 금강변 시골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 울타리도 없이 소나무 숲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초연하게 서 있다. 이곳에 서면 우리 문화에서 느끼는 삶의 멋과 여유, 그리고 자연 순리와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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