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개비
인생 개비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8.04.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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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제가 어렸을 적에는 옷가지가 많지 않아 옷이 해지거나 많이 젖기 전에는 입던 옷을 반복해 입었습니다. 겨울철에는 빨면 잘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갈아입을 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봄이 되면 어머니는 그간 입었던 겨울옷을 빨아서 장롱 속에 넣고 봄옷을 꺼내 입혀 주셨습니다. 봄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서면 동네 어른들은 저에게 “개비 했네”하며 “참 이쁘다”고 하셨습니다. 언뜻 들으면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개비'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개비가 무슨 의미일까?

저는 막연히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늦가을 어느 날 아버지께서 열심히 짚을 한 줌씩 길게 엮어서 날개 여러 단을 만들더니 “오늘은 겨울을 잘 나기 위해서 지붕 개비를 해 보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아! 지붕에 썩은 볏짚을 걷어내고 새것으로 갈아주는 것도 개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옆집 아저씨가 멋진 새 모자를 쓰고 오시자 사람들은 `모자 개비 했네'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새로 사거나 장만하면 개비라 하였습니다. 변화하든지 철이 바뀌면 개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가슴에 새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봄철이면 꽃구경을 갑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산수유나 벚꽃, 개나리 등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띱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붙잡혀 쉬어지지 않는 우리네 삶에서 붙잡힌 마음을 쉬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마음을 멈추어 보고자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방해물들을 다 놓고 용기를 내서 꽃구경을 떠나보는 이유는 정신의 개비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꽃구경을 다녀오는 것이 꼭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길도 막히고 몸은 지치며 짜증스러운 일도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새 힘이 솟아납니다. 꽃구경으로 인해서 `마음 개비'가 된 것이겠지요.

마음 개비란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엔가 붙잡혀 있던 마음이 꽃구경을 통해 놓아 버림으로써 얻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살면서 마음을 놓고 살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 놓아 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또한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평소 마음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놓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마음을 자유자재로 잡았다 놓았다 하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육신 개비도 필요합니다. 육신 개비는 운동과 식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건강한 육신을 잘 보전하려면 늘 적당한 운동을 통해 계속 `개비'를 해 가야 합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골고루 먹는 습관을 들이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습관을 고집하거나 자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골고루 먹어서 육신이 전반적으로 고르게 유지되도록 해야 육신 개비가 가능합니다.

살림 개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살림 개비는 이사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쓰다가 아까워 버리지 못한 물건들은 이사 가는 곳과 어울리지 않아 버리고 새로 장만하게 되지요. 옷가지나 신발들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됩니다.

마음을 개비 하고 몸도 개비 하고 살림도 개비 했으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습관을 개비 하는 것입니다. 습관이 자신의 특허인양 하지만 그 습관으로 인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 나에게는 개비 해야 할 습관이 없는지 한 번쯤 살피는 4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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