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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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청주 무심천변과 시내 곳곳엔 벚꽃이 만발했다. 상당산성 너머에 있는 우리 동네는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다. 시내와 3~4도의 기온차가 나다보니 항상 꽃소식이 늦다. 시내에 벚꽃이 필 때 목련이 피고, 시내의 벚꽃이 다지고 나면 비로소 상당산성 부근에서 시작한 벚꽃의 물결이 골짜기를 타고 밀려온다. 시내에 벚꽃이 지고난 후 뒤늦게 즐기는 꽃구경도 시골에 사는 호사중 하나다.

목련고개를 넘다보면 군락을 이룬 목련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봄꽃 중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피는 꽃인 목련은 마당이 있는 집이면 한그루쯤 있기 마련이다. 어려서 우리 집 마당에도 목련나무가 있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하얀 꽃 봉우리가 흐드러지게 피는 날이면 마당에 나가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하는 가곡을 흥얼거리며 그 아름다운 자태에 흠뻑 취하게 했던 꽃이다. 그런데 꽃이 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목련이 싫어졌다. 싫어졌다기보다는 애처로워졌다. 청초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그 잠깐의 절정을 지나 누렇게 지기 시작할 때부터의 모습은 활짝 핀 꽃 봉우리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툭'하는 소리함께 떨어져 나무 밑에서 뒹구는 꽃의 잔해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체로 큰 꽃들의 지는 모습은 목련을 닮았다. 활짝 피었을 때는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지만 꽃이 질 때는 추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아름답게 피어있는 시간보다 초라하게 지며 사라지는 그 시간이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장미가 그렇고 다알리아, 해바라기, 백합 등 큰 꽃들은 대부분 그렇게 진다.

그런 꽃들을 보면서 한때의 영화를 뽐내다가 사그라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의 정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초라한 모습으로 잊혀져가는 정치인이나 개인의 야망을 위해 사회정의나 인간의 도리를 헌신짝처럼 버렸던 많은 유명인사들의 말로를 떠올리게 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는 오늘도 유효하다. 봄꽃 중에서 산수유, 벚꽃, 진달래, 개나리 같은 꽃들은 작다. 한 송이나 한 나무의 꽃으로는 빛나지 않는다. 많은 꽃들이 서로 어울려야 아름답다. 그래서 군락을 이루고 피어난다. 이런 꽃들은 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바람에 흩날려 눈꽃처럼 내리기도 하고, 언제 지는지도 모르게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산화한다. 큰 꽃들은 애처로운 잔해를 남기며 사라지지만 이 작은 꽃들은 우리 마음에 잊혀 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아 다음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된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은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크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자신의 과거를 과대포장하고, 유명 정치인과 친함을 강조하고, 되지도 않을 공약을 내세운다. 또 공천을 받기위해서 라면 몸담았던 정당을 팽개치듯 탈당하고, 당선을 위해서라면 이념이나 신념, 우정도 갈아치운다. 그렇게 몸집을 키워 꽃을 피우려고만 할뿐 질 때의 초라함과 추잡함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모습은 뱀을 만난 개구리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의 배를 있는 힘껏 부풀리는 모습과 닮았다.

이제 우리의 정치는 바꿔야한다.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이번 지방선거부터 달라져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유권자의 각성이 필요하다. 허황되게 자신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이당 저당 기웃거리거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런 후보를 구별해 내야 한다. 작지만 한걸음 한걸음씩 주민을 위해 일해 온 이들이 지방의회와 단체장에 당선되는 그런 지방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작은 봄꽃들처럼 여럿이 함께 어우러지는 겸손함과 그들이 떠난 후에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지방정치가 정착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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